[이형권]고전(古典)이 고전(苦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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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고전(古典)이 고전(苦戰)한다

이형권(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08-10-20 00:00
▲ 이형권 충남대교수
▲ 이형권 충남대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웃 일본 사람들의 독서량에 한참 뒤질 뿐 아니라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바닥권에 속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가장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은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이전에 먼저 큰 소리를 치고 보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되는 교통사고 장면이라든가 정치인들의 토론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 이런 사실은 자명해진다. 독서를 통해 논리적인 사고력이나 폭 넓은 상상력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이니 비타협적이고 독선적일 수밖에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것만큼 심각한 문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독서 취향이다. 주요 서점에 나가 요즈음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외국어 학습 교재나 중고등학교 참고서라는 대답을 얻는다. 학습 서적 이외의 것으로는 그나마 가벼운 만화책이나 유치한 외국소설이 일정 수준의 판매량을 유지하게 해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 독서 시장은 이미 감각적 흥미와 이국 취향에 물들었기 때문에, 고전 급에 속하는 책이나 수준 높은 순수 창작물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에서 고전(古典)이 고전(苦戰)한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전을 경시하는 사회는 정신적 뿌리가 없는 사회이다. 정신적 뿌리가 없는 사회는 작은 변화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요동을 치는 사회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고전적 정신의 저류가 유유히 흐르는 민족은 내적인 자존감이 강하여 자잘한 세파에 흔들리지 않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컬어 ‘냄비 근성’이 지닌 민족이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런 말이 나오는 커다란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고전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시시때때로 읽어볼 수 있는 책, 특정한 시대를 넘어서 사람들에게 영원히 감동을 주는 책이다. 가장 보편화된 고전은 물론 성경이나 불경이겠지만, 이런 종교 서적 외에도 수시로 펼쳐서 마음 한 구성이 허전할 때 한 구절 한 구절을 음미할 수 있는 책을 한 권쯤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고전을 한 권쯤 머리맡에 놓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5분, 10분만이라고 조용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날은 분명히 더욱 풍요로운 꿈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율곡과 퇴계를 읽으면서 현세적 삶의 지혜를 구하고, 김부식과 정약용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이광수와 홍명희를 읽으면서 현실을 보는 혜안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서 인간의 근본에 대한 성찰을 하고,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를 읽으면서 인간 내면의 본성을 감응하고, 바이런과 워즈워드를 읽으면서 멋진 이상 세계를 꿈꿀 수 있다. 이것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영상물이나 흥미 본위의 만화책이나 가벼운 외국소설류 등이 가져다 줄 수 없는, 고전(古典)의 선물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은 상실감을 느끼기 쉬운 계절이다. 지나간 여름의 왕성했던 생명력이 서서히 소진되어 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무성하고 볕 좋은 날들이 이어진다. 여기에 고전을 읽는 정신적 풍요로움이 덧보태진다면 까짓 경기가 좀 나쁜들 대수이랴. 증권과 환율은 널뛰기를 하든 물가는 나 몰라라 저 혼자 롤러코스트를 타든 마음과 영혼의 거처가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으리라. 요즈음처럼 어려운 시대를 무난히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마음과 영혼의 거처인 고전(古典)이 고전(苦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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