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이 지나 진실규명… 국가 사과와 재심 권고
1981년 9월 현직 군인과 경찰, 검찰 직원, 교사 등이 개입된 공안사건이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당시 대전경찰서가 수사를 맡아 대전지검에 송치한 이 사건 당사자들에게 덧씌여진 혐의는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이적단체구성, 허위사실 날조유포, 이적표현물소지 및 배로, 계업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6가지.
이들은 이른바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해 이적행위를 해 온 혐의로 1981년 9월 7일 대전지검에 의해 구속 기소된다.
▲ 1997년 6월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해전씨(앞줄 왼쪽 첫번째) 등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사진제공-5.18아람동지회> |
‘아람회`는 1981년 5월 대전에서 당시 현역 육권대위인 김난수의 딸 아람양의 백일잔치에 모인 이들이 만들었다는 조직의 이름이었다.
당시 사건 당사자들은 박해전(26. 대학생), 김창근(26. 경찰), 김현칠(25. 검찰 직원), 이재권(25. 회사원), 황보윤식(32. 교사), 정해숙(47. 교사) 등 6명과 현역 군인 신분으로 군검찰에 송치된 김난수(27), 그리고 이들에 대한 불고지 혐의를 받은 3명 등 모두 10여 명이었다.
이들이 이 사건에 연루된 사연을 이렇다. 박해전과 김난수 등 5명은 금산고등학교 동창생이었고, 황보윤식은 이들의 역사교사였으며, 정해숙은 금산 출신으로 금산여고에 재직한 바 있었다.
1982년 2월 11일 대전지법(재판장 김학세, 판사 황승연·이인제)은 이들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에 달하는 중형을 선고한다. 이후 서울고법은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중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를 무죄로 판결해 형량을 낮추지만, 대법원이 이를 파기 환송, 다시 1심과 같은 형이 확정된다. 김난수 역시 1982년 제3관구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의 형을 받고 항소·상고 했으나 차례로 기각된다. 이들은 1983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뒤 이후 사면복권된다.
▲20여년 만에 밝혀진 진실=5공화국시절 대표적인 시국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의 진실은 20여년이 지나서야 밝혀진다. 박해전 등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 2006년 11월 조사를 시작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7월 이 사건이 불법감금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해 조작된 사건임을 규명하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당시 사건 관련자들이 모처에 모여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고, 미국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했다는 신고를 접수한 대전경찰서가 이들을 차례로 연행해 충남도경 대공분실과 여관 등지에 감금한 채 가혹행위에 의한 거짓 자백을 받아냈고, 재판부 역시 이를 근거로 형을 확정했다는 것.
이들은 당시 아람양의 딸 백일잔치에서 친목모임을 갖기로하고 당시 거론된 ‘아람회`라는 이름이 반국가단체로 둔갑했으며, 이들의 집에서 발견된 광주사태의 진상에 관한 유인물 등이 빌미가 됐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가리려 했던 신군부 정권하의 경찰과 사법부에 의해 저질러진 명백한 인권침해와 조작 사건이었음이 20여년 만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대전지법 판사로 1심 재판에 참여했던 이인제 의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하기도 했다. 레드콤플렉스가 빚어낸 시국 사범, 그리고 간첩 사건이 참여정부는 `누명`의 멍에를 풀어주며 진실을 밝혀내기도 했다./오주영·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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