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
선입감을 배제하기 위하여 해설조차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곡을 처음 들으며 적어둔 메모가 해설 내용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현대음악을 마치 추상화의 난해함에 빗대어 해석하려던 필자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가냘픈 명상적 흐름과 모든 현악기의 강렬한(sizzling) 합창이 반복되는 제 6악장은 베토벤의‘전원 교향곡`냄새가 난다.
필자가 우리의 흥타령으로 읽은 5악장의 동양적인 멜로디는 9, 10악장으로 이어지는 인도철학이었다. 열개 악장이 저마다 독립된 교향시이면서도, 사랑과 삶과 죽음의 주제가 전곡을 일관한다. 분명히 표제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음악보다 더 짙은‘탐미주의`의 색깔을 현대음악에서 발견하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십년 전 쯤 제주에서 처음 맛본 매생이국이 평생 입에 익은 미역국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것처럼...
대전시향은 페스티벌 개막공연‘토스카`의 수준 높은 연주에 이어 투랑갈릴라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였다. 피아노 비중이 협주곡과 다름없는 이 곡에서 신기에 가까운 기교를 보인 빌헴 라츄미아는 북아프리카계 애프로-프렌치의 인텔리 스타일로, 날씬한 체격과 용모에서 인기몰이중인 미국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를 닮았다.
역시 시대는 연주자에게도 비디오의 뒷받침을 요구하는가? 투랑갈릴라를 연주할 수 있는 단 네 명 중 하나라는 명성에 부족함이 없었다. 파비엔느의 옹드마르트노는 스피커 달린 전자악기가 고전악기와 멋지게 대화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시향 역사상 이처럼 많은 타악기가 동원된 것도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다양한 편성에다가 리듬의 일체감을 공유하기 어려운 현대음악에서, 거의 완벽한 유니즌을 만들어 낸 연주자들의 싱크로니즘은 연습과 집중력의 열매가 아닐 수 없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모두 초청하려했던 장장 90분의 대곡을 자원하여 지휘한 콜로메르는 물론, 단 여섯 번의 리허설로 난곡(難曲)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시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모자란 예산에 안팎으로 경제가 위축되어 협찬은 반 토막 나고 마침 전당 직원 인사이동까지 겹친 삼중고 속에서, 외형보다 알찬 내용으로 승부한 그랜드 페스티벌의 성공적인 폐막을 축하하며, 내년의 더 풍성한 잔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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