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50주년의 푸치니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불구하고 관객의 인기는 최고였다고 한다. 20세기의 문을 연 토스카(1900년 1월)를 비롯, 그의 오페라 대부분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현실을 보면, 신중하게 대본을 골라 3, 4년 동안 고치고 또 고치며 창작에 몰두한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고, “소비자는 역시 현명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공연은 몇 년에 한번 만나기 힘든 수작이었다. 먼저 볼로냐버전을 제대로 살린 프랑코니 리의 연출과 디자이너 그로시의 공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무대의 비중이 높은 토스카에서, 1억이 채 못 되는 경비로, 그로시가 인수해가고 싶을 만큼 멋진 무대를 그려낸 우리 미술인들의 실력이 자랑스럽다. 1막에서 계단에 비스듬히 걸친 아타바티의 그림은 카바라도시(빅토르 아파나센코)가“오묘한 조화”를 부를 때 훌륭한 연단 구실을 했다. 계단은 전편에 걸쳐 현대감각이 물씬한 기하학적 배경이 되었는데, 특히 마지막 총살장면은 공화혁명이라는 극중내용과도 들어맞아, 아이젠시타인의 고전영화“전함 포템킨”에서“계단 장면”을 연상케 하는 비범한 착상이었다.
카바라도시의 다소 약한 성량을 감성적 창법으로 유도하여 극적 드라마티즘으로 살려낸 연출솜씨는, 유난히 잦은 키스신과 함께 이번 토스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모든 디바가 이 한 곡을 부르려고 토스카역을 꿈꾼다는 제 2 막의 아리아“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이네스 살라자르) 역시 감정에 치우쳐 전달이 약한 감이 있다.
음악적으로는 스카르피아(미하엘 칼만디)의 바리톤이 군계일학. 잔물결처럼 부드럽게 흐르다가 극적인 반전 마다 폭발하는 콜로메르의 대전시향은, 무르익은 성숙도를 자랑하며 이날 공연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예술성보다 TV드라마 못지않게 극적인 사랑과 복수의 드라마로서, 긴장감 있는 치밀한 짜임새 및 뛰어난 무대와 어울려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작년에 고양으로 옮겨간 조석준대표의 대전 사랑과 김용환 관장의 노력이 빚어낸 공동제작이, 내년에는 조금 더 범위를 키울 계획이라고 하니, 자못 기대되는 바가 크다.
십여 년 전 어느 봄날, 잠시 들른 디트로이트에서 본 토스카. 지역 오페라의 짱짱한 실력에 미국 클래식의 저력을 실감했다. 옛 건물인지라 주차장이 부실하여 광장과 도로에 줄을 쳐놓고 상공회의소 회원부인들이 주차안내 자원봉사를 하는데, 대장(?)은 시장부인이었다.
휴식시간 30분에 마시는 음료는 1달러요 샴페인은 5달러로, 준비와 서빙은 역시 자원봉사이며 수입은 극장 운영비에 보탠다고 했다. 말 그대로 대화와 화합의 무대다. 이에 비하여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알뜰한 작품을 올려온 대전오페라단이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펑크를 낸 우리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깝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