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종별 : 대전시기념물 제3호
시대 : 청동기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대전시 유성구 원내동 내동리고인돌은 본래 위치(옛 대덕군 진잠면 내동리 산 9-1)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암소바위`라고 불리던 이 고인돌이 학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62년이다.
그러나 대덕군 진잠면 내동리와 기성면 관저리 일대 77만9570㎡(22만평)에 조성되는 충남방적공장 부지에 고인돌이 들어가게 되자 1977년 8월 발굴조사를 실시한 후 현재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4기 모두 무덤 아랫부분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덮개돌이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발견된 민무늬토기나 삼각형 돌화살촉으로 보아 후기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추정된다.
▲ 방치돼 있어 보호 관리가 절실한 내동리 고인돌. |
반면 유성구 교촌동 칠성당 고인돌(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32호)은 주민들이 직접 풀을 베고 가꾸는 등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내동리고인돌과 대조를 이뤘다.
‘칠성당이` 마을 뒷산에 있는 이 고인돌은 15m×20m 범위 안에 7기가 밀집되어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2호 고인돌의 경우 크기가 2.1m×1.6m고 3호 고인돌의 굄돌이 드러나 보이는 바둑판식 고인돌로 우리 고장의 청동기시대 문화의 분포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대전에는 비래동고인돌(대전시기념물 제33호)을 비롯해 가오동, 사정동, 관저동, 외삼동, 대정동, 석교동, 송촌동, 평촌동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박연아 시민기자/영상 금상진 기자
※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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