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준]젊은 날의 읽을거리, 그 쓸쓸한 풍경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조태준]젊은 날의 읽을거리, 그 쓸쓸한 풍경

[문화초대석]조태준 연극연출가.배재대 공연영상학부 교수

  • 승인 2008-10-05 00:00
  • 신문게재 2008-10-06 20면
  • 조태준 연극연출가조태준 연극연출가
▲ 조태준 연극연출가.배재대 공연영상학부 교수
▲ 조태준 연극연출가.배재대 공연영상학부 교수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가 멀다보니 평소 나의 일상은 매우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출퇴근 시간은 편도로만 2시간 40분. 자가용을 타지 않는 난 버스와 기차, 그리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꽤나 복잡한 방법을 이용하곤 하는데, 여기엔 평균 20분 정도의 걷기가 포함된다.

이쯤 되다보니 주위에선 걱정과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다. 그래가지고 몸이 당해내겠어? 언제까지 그렇게 살려고 그래? 하지만 난 누가 뭐래도 나의 2시간 40분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편이다. 무궁화호를 새마을호로만 바꿔도 약 20분정도는 절약이 되겠지만(내가 사는 곳에는 KTX가 서지 않는다), 난 꿋꿋하게 무궁화호를 고집한다.

물론 나는 나의 ‘2시간 40분’을 공간이동에만 활용하지는 않는다. 유익하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세상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고 관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익하다고만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들 모두가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소중하다고 한 이유는 그들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기차에 오르면 난 독서를 한다. 거의 매일 반복되지만 여전히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무궁화호는 이후로 내게 1시간 반 정도의 독서시간을 보장해준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주로 국내외 소설을 탐독하는 편이다. 요즘 난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내가 타고 있는 무궁화호엔 유독 대학생들이 많다. 아마도 천안이나 조치원 근방의 여러 대학들이 그들의 목적지일 것이다. 내가 독서를 하는 동안 그들도 뭔가를 한다.

그 ‘뭔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엔 그들 모두에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잠을 잔다. 가엾은 우리 대학생들. 원래 젊음이란 에너지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시기의 어떤 불균형 속에서의 출렁거림 같은 것이다. 저들 중 깨어있는 자 대부분은 예외 없이 핸드폰을 움켜쥐고 있다.

저들의 눈은 뿌연 안광(眼光)으로 탁해져 있고, 저들의 손은 해파리의 촉수만큼이나 기민하다. 작은 LCD 창에서 생사를 거듭하는 불쌍한 문자들. 저들은 그렇게 읽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해 버린다. 한 시간 내내.

나는 이제 학교에 가면 나의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써낸 글 속에 그들은 없다. 그들은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취합한 글조차도 제대로 읽지 않았을 테니까. 그 글을 앞에 놓고 한 마디 쏘아붙인다. “글 쓰레기 모아 오느라 수고했어. 네 컴퓨터 마우스한테 안부 전해줘.” 이내 머쓱해하는 모습을 보면 또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다음엔 예의상 협박에 가까운 충고를 해준다. “얘야, 옛날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글을 썼어. 실제로 글 잘 못써서 죽은 사람이 허다하단다.” 나의 착한 학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힘없이 돌아선 그 학생은 잠시 후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다음엔 열심히 할게요. ^ ^; 사랑해요.”

그래, 얘들아, 나도 너희들을 사랑해. 그런 너희들의 순진함과 너희들의 건강함이 나의 읽을거리가 될 수는 없을까. 너희들은 오늘 어떤 댓글을 올렸니? 너희들의 블로그엔 또 어떤 예쁜 이야기들이 새로 태어났니?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2. "내 아기 배냇저고리 직접 만들어요"
  3. "우리는 아직 청춘이야"-아산시 도고면 주민참여사업 인기
  4. (주)코엠에스. 아산공장 사옥 준공
  5. 아산시인주면-아름다운cc, 나눔문화 협약 체결
  1. (재)천안과학산업진흥원, 2024년 이차전지 제조공정 세미나 개최
  2. 천안문화재단, '한낮의 클래식 산책-클래식 히스토리 콘서트' 개최
  3. 충남 해양과학고 김태린·최가은 요트팀 '전국체전 우승'
  4. 천안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대응 총력
  5. 천안시, 직업소개사업자 정기 교육훈련 실시

헤드라인 뉴스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NH농협은행에서 15억 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NH농협은행은 25일 외부인의 사기에 따른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사고 금액은 15억 2530만 원, 사고 발생 기간은 지난해 3월 7일부터 11월 17일까지다. 손실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해당 차주는 서울의 한 영업점에서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고 부동산담보대출을 과도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이번 사고가 외부인에 의한 사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수사 결과에 따라 형사 고소나 고발을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수사기관..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은 자치구 방문행사로 대전 발전의 핵심 동력인 유성구를 찾아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을 통한 유성 발전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5일 유성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정용래 유성구청장과 구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8기 2년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자치구 현안과 구민 건의사항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8년만에 착공을 앞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을 설명했다. 이 시장은 "시에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무기력했고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평가받던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이 기본계획이 수립된지 28년만인 다음달 말..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이 2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특히 다음 달 유류세 인하 폭 축소가 예정되면서 운전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2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20∼24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리터당 1.47원 상승한 1593.06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유도 0.83원 오른 1422.31원으로 나타났다. 10월 둘째 주부터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지만, 상승 폭은 다소 둔화됐다. 대전·세종·충남지역 평균가격 추이도 비슷했다. 이들 3개 지역의 휘발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