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겸 시인,한국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장 |
작가는 언어가 실재와 동일한 의미가 있다고 믿고 그 언어가 만들어내는 허구와 상상의 세계를 현실처럼 믿어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이 믿음이 지나치면 언어와 세계에 대한 정신분열에 이를 수가 있으므로 작가는 언어의 매혹을 경계해서 현실적 합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작가는 실재를 대리하는 전통적인 수사인 상징이나 은유로 현실을 묘사하지만 흙으로 만든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로 수사는 시간의 마모를 견디지 못합니다. 낡은 집을 페인트로 단장하듯이 새로운 비유를 모색해서 언어로 구축한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잉카인 들이 사람의 피를 태양신에게 수혈하지 않으면 태양이 죽고 세계가 멸망하므로 새로운 피를(특히 왕족 같은 고귀한 사람의 피가 더 중요했습니다) 끊임없이 구해야 하는 사명감의 강박증과 같습니다.
언어가 자기갱신을 않으면 세계는 멸망할까요?
멸망하지야 않겠지만 과거의 태양이 죽고 새 태양아래 새 나무와 풀이 자라는 신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문화의 온실 같은 환경이 연상됩니다. 주역 육십사괘중에 뇌풍항(雷風恒)이라는 괘가 있습니다. 하늘에는 번개가 치고 땅에는 심한 바람이 부는 환경인데 만물이 결실을 맺어 결과가 있는 안정의 뜻이 있습니다. 항(恒)자는 마음이 길게 뻗어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계가 항구적으로 보전되기 위해서는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어야 하는군요. 번개와 바람은 세계내의 운동원리를 나타내고요. 운동하지 않는 만물은 곧 죽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언어가 자기갱신을 하지 못하면 언어세계의 새로운 태양은 뜨지 않고 문화는 피를 흘리고 쇠약해져서 죽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언어세계의 유지를 위해서 잉카의 사제처럼 언어의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일의 사명을 맡은 자입니다.
그 책무를 게을리 할 때 정말 세계의 피는 탁해지고 메말라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잉카인 들의 숭고한 세계관을 근대의 이성이 비웃었듯이 작가들의 이런 생각을 과학이나 자본이 조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연금술적인 의식의 과정과 창조를 거쳐 언어의 새로운 피를 작품에 불어 넣습니다 . 작품이 새 피를 수혈해서 문화의 태양이 밝아졌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그러나 타인의 견해나 시선과 상관없이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언어의 제의를 수행합니다. 그의 작품의 탁월함은 문화의 가치나 평가에 의한 카테고리에 묶이지 아니하고 신성함의 누미노제를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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