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향 아산 온양여중 교사 |
꽃보다도 더 아름답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의 풍경을 보며, 가을이 그렇게 저 홀로 깊어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에게 깊은 성찰을 묻게 되는 즈음이다.
나의 이 가을이 그리 허전하지만은 않은 것은, 속상하는 일을 심심찮게 제공해 주는 우리 반 아이들이지만, 서로를 향한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말랑 말랑한 힘이 있어서이다.
아이들로 인하여 맥 빠지는 날들이 하염없이 늘어나는 순간들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이들로 인하여 내가 충만한 하루를 살았음을 감사하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충만함을 담뿍 전해 주는 건,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써 오는 ‘생각 나눔 공책’이 그 힘의 원천이라고 고백한다.
서로의 속살을 내보이듯 나눈 아이들과의 알콩달콩 고소한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어제 종례시간에 아이들 ‘생각 나눔 공책’에 일일이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 을 붙여주며, 이 시가 각자에게 전해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느낀 대로 솔직하게 써 보자고 했다. 가을도 깊어져 가고 있는 만큼.
시 ‘연탄 한 장’을 읽고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 나눔 공책’에 쓴 글들.
○ 수지-이 시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고, 또 사람들이 이 시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을 것 같다.
○ 수경-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른 사람에게 연탄 한 장, 작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탄 한 장 되어주자는 것이 너무 좋았고,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연탄 한 장의 값어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주연-나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때까지 나도 그 누구에게도 연탄이 되보진 못한 것 같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연탄이 되고 싶다.
○ 찬주-겨울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다. 나를 희생해 남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데, 이 시를 읽으면서 난 얼마나 희생하여 사랑을 전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남에게 희생해 사랑을 주기보다는 남이 희생하여 사랑을 주기만을 바란 것 같다. 나도 이젠 훈훈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지은-연탄 한 장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해 주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삶을 살고 싶다.
○ 고은-정말 인생은 연탄 한 장인 것 같다. 연탄처럼 배려도 해 주고 남을 위해 힘을 주고 희생도 해야겠다는 걸 알았다.
오늘 아침 아이들의 '생각 나눔 공책'을 읽다가 내 눈시울은 붉어지고, 마음이 환하게 환하게 밝아져 간다.
참 예쁜 아이들의 그 고운 속삭임들..... 참 좋은 시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도 다가가 더 큰 울림으로 품어지는구나!
우리 아이들 모두가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연탄 한 장’이 되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덥히는 그런 소중한 사랑덩이로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봄부터 겨울까지의 시간의 갈피 갈피들 속에는 단내 나는 피곤이 묻어나기도 하겠지만, 그 속에 간직한 알곡은 결국 모두 다 사랑임을 나는 아이들을 통하여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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