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서열화.과외열풍.대도시 쏠림 해소 목적
진학률 급격 증가 고교입시 과열로 문제 재현
‘중학입시는 크나큰 사회문제로 대두될만치 고통거리로 되어있으며 시급히 새결해야할 문제라는 점에 대해선 누구나 동감일줄 알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렇게도 뜯어 고쳐보고 저렇게도 뜯어 고쳐보는 따위의 그야말로 떡 주물러대는 식으로 해도 좋다고는 절대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1968년 7월 16일자 중도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의 일부다. ‘자고나면 바뀌는` 교육제도나 입시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 모양이다.
국제중학교 설립 등으로 중학교 입시 부활 논란이 일고 있는 오늘날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 기사 내용은 40년 전 중학교 입시 폐지와 무시험 전형 실시에 대한 문교부의 발표 내용을 다루고 있다.
1968년 7월 15일 당시 문교부는 당시 학교별 입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던 중학교 입시를 무시험 추첨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중학교 입시제도를 발표한다.
이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는 다음해 서울에서 시범 실시를 거친 뒤 1971년 2월 12일 대통령령에 따라 대전에도 적용·실시된다. 충남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다음해인 1971년이었다. 당시 실시된 추첨 방식이 바로 수동식 추첨기에 학교 번호가 적힌 은행알을 넣어 돌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학교 배정을 일컬어 ‘뺑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기도 했다.
‘7.15 입시개혁`으로 알려진 중학교 무시험 제도는 당시 ‘중학교 입시 지옥 해소방안`으로 거론될 만큼 입시로 인한 과열 경쟁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말해준다. 지금의 상황과 비견될 만큼 당시로서도 사교육과 학교간 서열화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이는 의무교육 실시 이후 1960년대 들어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진학 희망자를 수용할 만한 중등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탓이었다. 부모들의 교육열은 중학교 입시를 위한 초등학생들의 과외 열풍과 명문학교 진학을 위한 대도시로의 쏠림 현상 등 과열 양상으로 이어졌다.
실제 이 당시 한밭중과 충남중 등 대전지역의 이른바 명문중학교는 해마다 4~5대 1의 높은 입시 경쟁률을 보였으며, 각급 학교에서는 입시때마다 시험 문제 오류에 대한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당시의 입시 개혁은 바로 이러한 입시 문제 해소를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 개혁안은 ▲초등학교의 입시준비 교육 지양 ▲과열된 과외공부 및 극단적 학교차 해소 ▲입시로 인한 가정 부담 해소 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또 중학교 무시험제는 사실상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지역의 중학교 진학률과 학교 수도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다. 충남에서는 이때 학교와 학급수를 증설이 이뤄졌고, 1971년 당시 62.5%이던 중학교 진학률은 1970년대 후반 90% 이상까지 상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학률 증가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바로 고교 입시의 과열 양상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학교간 격차 해소와 평준화 실현은 전제로 1974년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최초 실시하게 되고, 평준화 지역 확대에 따라 대전에서는 1979년 고등학교 연합고사가 실시된다.
40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날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해소가 여전히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교육문제가 얼마나 풀기 힘든 실타래인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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