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철모 충남도 부이사관 |
그리고 고조선이 한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우리민족이 다시 동북아의 패자(覇者)로서 한족과 경쟁하면서 고대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고구려의 유적지는 개혁·개방으로 힘을 비축한 중국의 동북공정 저의(底意)가 알려 지면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내린 곳은 길림성 성도(省都)인 장춘이다. 길림성은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곳이며 동북3성의 하나로 요녕성, 흑룡강성 등과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동북3성 지역은 고구려, 발해의 영토와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는 지역인데 석탄, 철광 그리고 석유의 매장량이 상당하다고 한다.
장춘에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의 황궁이 있는데 일본이 대륙침략과정에서 부이를 이용했다. 중국 정부는 일제의 앞잡이가 된 부이황제를 본받아서는 안된 다는 교훈을 전하기 위해 僞황궁을 유적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면에는 만주족 뿐만 아니라 조선족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통치전략이 있는 것 같다. 즉, `너희들은 한족에게 충성하고 한족의 보호하에 있음을 고마워 하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중국내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들어왔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그들의 의식구조는 이미 상당히 중국화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두산은 8억년전에는 바다였는데 500만년전(천만년전이라는 설도 있다) 화산폭발로 천지와 봉우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산위에 얹혀 있어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천지 주변에는 해발 2,5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16개 인데 그중 7개는 북한지역에 6개는 중국지역, 3개는 두나라에 걸쳐 있다고 한다. 북한이 백두산의 거의 절반을 중국에 넘겨준 것은 한국동란때 모택동이 인민해방군을 보내 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영토를 넘겨주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변명이 되지 않는 사안이다. 그들이 말하는 `주체`의 가면은 오로지 김일성부자와 소수의 권력자들을 위해 쓰여지고 민족의 역사에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낸 것이다.
중국 장쩌민 전 주석도 3번씩이나 백두산을 올라 갔지만 천지를 한번도 못보았다고 하는데 단 한번의 등정으로 천지를 볼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산을 올랐다. 우리가 택한 곳은 서쪽길이었는데 중간에 금강대협곡을 구경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비하면 규모가 아주 작았지만 화산 폭발로 깊은 협곡이 형성되어 있고 물이 흐르고 있어 위에서 내려 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1시50분경 백두산 천지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계단은 전부 1236개로 30분 정도 걸렸다. 천지쪽을 쳐다 보니 구름이 멀리 있었다. 빨리 올라가면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조급한 마음에서 숨이 찬데도 불구하고 계단을 총총 걸음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백두산 천지 앞에 섰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신이 내린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가운데 천지 못이 있고 그 둘레에 화산마루들이 곱게 빗질한 것처럼 솟아 있었다. 천지 물은 새파랗고 아주 맑았다. 2시 방향으로 장군봉이 위엄있게 솟아 있었고 12시 방향으로는 장백폭포쪽으로 올라오는 북쪽 천문봉이 눈에 들어왔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