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 |
가냘프면서도 당찬 바이올린의 울림, 시냇물과 폭포를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의 음색, 중후한 첼로의 흐름, 감미로운 꿈을 담은 플루트의 가락, 옛일을 추억케 하는 트럼펫 소리 등이 영혼을 깨우는 선율입니다. 물론 오보에, 클라리넷, 잉글리시 호른, 파곳 등이 그려내는 멜로디를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꽤나 이국적인 악기들의 연주도 라디오나 TV 혹은 인터넷을 통해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안데스의 영혼을 담은 삼뽀냐(zampona), 경쾌한 하와이의 우쿨렐레(ukulele), 라틴뮤직의 멋을 한껏 머금은 마림바(marimba), 섬세하며 우아한 쳄발로(cembalo) 등의 악기들을 예로 들어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의 전통악기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성종 24년(1493)에 편찬된 음악총서 ‘악학궤범(樂學軌範)’은 66종의 악기를 음악계통에 따라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문물제도를 망라(網羅)한 백과사전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악고(樂考)’편에서 여덟 가지의 악기재료(八音)를 기준으로 총 67종의 악기를 분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국악기는 약 80여 종으로 연주법이 소실되거나 의물(儀物)로 사용된 것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그 종류나 규모 면에서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국악기라 함은 삼현삼죽(三絃三竹)이라고 불리는 순수 고유 악기들로부터 외부에서 유입되었으나 우리 전통음악에 맞게 변모한 악기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삼국유사’의 ‘기이(紀異)’편에 소개된 만파식적(萬波息笛) 대금. 청공(淸孔)을 막은 갈대속청이 그윽하고 독특한 소리를 자아냅니다. 왕산악이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현학금(玄鶴琴) 거문고. 선비의 기개를 닮은 여운은 유현하며 고고하여 바깥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우륵의 음악을 들려주던 가야금. 즐겁고 때론 애처롭지만 결코 경망스럽지 않습니다(樂而不流哀而不悲).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잔한 해금의 선율. 장엄하고 구성진 아쟁. 관악합주의 주선율인 힘 있고 시원한 피리. 신라의 향기 나는 향비파(鄕琵琶). 신비한화음의 생황(笙簧). 청아한 단소. 상원사 동종(銅鐘) 속 비천선녀의 공후(??)….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슬며시 숨을 놓아버리거나 혹은 기운을 잃어가는 우리 악기들의 이름을 우리 모두 크게 불러 이 땅위에 다시 한 번 우뚝 세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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