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소유자는 담보대출받은 돈을 기한이 지나도 상환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이자도 갚지 못하는 지경에 빠졌다. 돈을 빌려준 금융계에서는 최고(催告) 공매처분을 서둘렀지만 대여원금도 챙기기 힘들게 됐고 이것이 축적되어 급기야는 금융기관 자체의 부실로 줄도산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분석, 해설, 경고성 예고… 등이 미국발 악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약 1년 전부터다. 세계금융시장과는 유기적 연관관계에 있는 것이 미국 금융시장이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가 고뿔에 걸리면 당장 한국의 주식시장은 폐결핵에 신음한다’는 비유처럼 미국의 악제는 사정없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미국 달러의 약세가 세계금융시장을 뒤집어놓고(유독 한국은 예외적으로 달러강세행진) 상대적 논리로 천정부지로 솟고 있던 국제원유값과 원자재값이 급속히 하락현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미국의 국제시장 리딩력이 급속히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년 여름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자산이 많은 초대형 상업은행 하나가 부도를 내고 망해버렸다. 초가을에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자산규모가 가장 큰 투자회사가 부도 직전에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자산규모의 몇%의 돈으로 넘어갔지만, 인수한 회사 또한 감내해 갈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 제1,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가 지급능력 부족으로 파산상태에서 헤매다가 정부의 긴급구조금융으로 형식적인 연명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는 새끼 금융회사(규모가 작은)들도 공통위기를 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때 미국 정부와 대통령은 파격적이고 전격적인 놀라운 긴급처방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첫째, 지난여름 미국 행정부는 “소비를 진작해야 경제가 생기(生氣)를 얻는다”는 비전으로 미국 국세청에 세법에 따라 이미 납세한 총액 1200만 달러를 즉각 납세자에게 환원시키는 조치를 했다. 우리돈으로 130조의 큰돈이다. 둘째, 파급효과가 큰 금융기관의 도산 직전에 수백억 달러씩 긴급 구제금융을 해주었다.
셋째, 이번에는 총액 7000억 달러(800조=한국의 GDP)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달라는 대권(大權)을 입법승인해달라는 요청을 의회에 내놓았다. 입법 승인은 7일내에 처리해달라는 요지이고 그 돈을 관리하는 집행기구도 별도로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7000억 달러는 이라크전쟁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고 200여년 미국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경제회생을 위한 긴급조치인 것이다.
넷째, 이러한 뜨거운 공을 심의할 미국의 정치사정은 복잡하다. 행정부는 부시대통령의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지만 의회는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으며 의회 내의 모든 위원회 위원장, 의회 의장은 100%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제안을 받은 날로부터 70일 후에는 대통령과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건곤일척의 정치싸움이 한창일 때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회에서는 이 제안을 기일 내에 처리하기로 받아들이고 서둘러 긍정적인 심의 일정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세계 속의 미국 경제를 구제하는 것은 정쟁보다 앞선다는 판단이고 만일 이를 거부하면 살릴 수도 있었던 미국 경제를 민주당이 반대하여 실패하게 되었다는 타배기를 쓸 수는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뉴욕 월가에서 발화한 큰 불길은 머지않아 폭포수같이 무식하게 퍼붓는 구제금융의 소방수에 의하여 잠잠하게 그 불길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미국발 금융대란으로 폐결핵으로 신음하는 꼴이 바로 우리나라 경제 난국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밀물처럼 쏟아져왔던 대 한국투자가 그들의 속사정 때문에 지난 몇 달간 거의 반에 가깝게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것이 바로 참혹한 주식폭락의 한국형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경제사정도 파고들어가 보고 좌우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제대란을 일으킨 원인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정부가 미국의 행정부에서 긴급조치한 수준의 긴급조치를 해 줄 수 있는가? 할 의지도 해낼 정치적 위치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국난과 경제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사 정치적 이해만 앞세우고 발목잡기에 능한 술수와 투쟁일변도의 제동만 걸고 있기 때문이다. 한심한 것은 이러한 고질병이 국정의 책임을 져야 할 여당 내에도 상당히 크게 세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는 100점 만점의 시책은 결코 없는 것이다. 급할 때는 시기에 맞게 어지간하면 바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불길은 시간이 늦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를 동원해도 잡을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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