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한남대 총장 |
첫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무엇이 성공인가’를 읽어보자.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건강한 아이를 낳든 /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 단 한 사람의 인생이 정말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소박한 성취와 조그만 보람으로 성공을 규정한 에머슨의 시를 통해 우리의 욕망과 번민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자.
둘째, 뉴욕의 신체장애인 회관에 걸려있는 시를 찾아가보자.
“나는 神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도록 / 하지만 神은 나에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神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 나는 神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 하지만 神은 나에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 神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 모든 사람들 중에서 /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진정한 축복은 요구한 것을 받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받는 것이다. 되고 싶은 대로 다 되고,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게 되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은 깨닫기가 어렵다. 그래서 꽃 한 송이가 피고 열매 한 알이 영글기 위해서도 하나님과 사람의 공동 노력과 합동수고가 있어야 됨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셋째,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菊花)옆에서’를 읽어보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보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오상고절에 홀로 피어나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은 한 송이 국화꽃을 위해서도 소쩍새의 슬픈 울음,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와 시인의 잠 못 이루는 밤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된다.
넷째, 김현승 시인이 쓴 「가을의 기도」를 들어보자.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가을은 기도가 필요한 계절이다. 봄과 여름동안 수고한 데 대한 감사, 곡식과 열매를 익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 그리고 추운 겨울을 맞이할 준비 때문에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나와 이웃과 국가를 돌아보자. 실제로 법원에 있는 사건의 대부분은 극히 사소한 일에서 벌어진 것이다. 술집에서의 허세, 가정에서의 언쟁, 한두 마디의 모욕적 언사, 비난하는 말 한마디…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 폭행과 살인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골치 아픈 일들의 대부분은 자존심, 위신 지키기, 허영심 등에서 빚어진 사소한 일들이다. 한 쪽에서 잠깐만 참았으면 괜찮았을 일들이다. 그래서 가을엔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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