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인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
라면은 어찌보면 우리나라에 있어 인스턴트 음식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각종 통조림, 빵, 햄버거 등 인스턴트 식품이 발달해왔다. 이제는 밥과 국도 편의점에서 구입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라면처럼 우리 생활 속에 빠르고 깊숙이 파고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휴대폰이다. 1988년 7월 1일 서비스를 개시한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784대였다. 그러던 것이 20년 만에 가입자가 4500여 만 명으로, 1인 1휴대폰 시대가 됐다. 지난 20년간 휴대폰은 ‘발전’이 아닌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제는 통화기능이 부수적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부가기능이 장착되면서, 필자처럼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능력에 비해 과분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으로 TV를 보고 인터넷을 하고, 모바일뱅킹, 길안내까지 받는 등 이제 휴대폰은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라면으로 대표되는 인스턴트식품과 휴대폰의 진화는 현재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1년에 55개의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은 바로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달리는 차안이나 길을 걸으면서도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일상이 휴대폰에 더 많은 기능을 더하게 한 것이다. 결국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시간을 좀 더 아껴 여유를 갖고자 하는 우리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라면과 휴대폰에 녹아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소박한 바람’과는 정반대로 변해가고 있다. 비만으로 고민하고, 전에 없던 위장병이 우리 몸을 괴롭힌다. 언제 어디서나 울려대는 휴대폰은 결코 나만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허겁지겁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걸어 다니는 시간도 줄였건만 여유가 늘기는커녕 우리네 삶은 더욱 시간에 쫓길 뿐이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보리쌀을 불리고 쪄서 가마솥에 밥을 해먹던 시절, 간식 하나도 정성과 시간이 소요되던 시절,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리거나 혹여 급한 소식이라도 전할라치면 전보를 띄우던 시절이 우리네 삶에 더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더욱 바빠진 것은 왜일까? 혹여 우리 마음 때문은 아닐까!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가 마음에 채찍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의 여유를 찾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요즘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보다는 보통식품인 슬로푸드 먹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에서 여유 있고 느리게 사는 것이 기본에 충실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갈파하고 있다.
물이 가득 찬 컵보다는 약간은 비어 있는 물 컵이 안정돼 보이듯이, 채우면 채울수록 커지는 ‘욕망’이라는 그릇을 조금 비워보면 어떨까? 이제 ‘빠르게’ 살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살아보자.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 직전에 문이 닫히고 올라가 버렸을 때 ‘내가 한발 늦었다’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한발 빨리 왔구나’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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