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 초기진압 실패로 최악사태 초래
화재 취약 재래시장의 안전강화 논의 촉발
▲ 대전 중앙시장 화재사건을 보도한 1969년 4월22일자 본보. |
불은 오후 5시30분께 중앙시장 내 A동 2호(스펀지 창고)에서 시작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인접 점포로 옮아 붙어 2시간 만에 주변 점포 364동을 모두 태워 2억5000만원(경찰 추산)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날 화재는 소방당국이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서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화재가 발생하자 당시 대전소방서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해 물을 뿌리며 진압에 나서 불길이 잡히는 듯했으나 소화전이 제 역할을 못해 진화작업이 지체됐다.
불이 난 중앙시장의 모습은 당시‘지옥`을 연상시킬 만큼 처참했다. 목조 구조의 피복상과 헌책방이 많았던 중앙시장 화재현장은 대피하는 상인들과 벌떼같이 몰려든 구경꾼들로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스펀지 창고 건물 아래층에 자리잡은 상인들은 상품 하더라도 더 건지려고 안간힘을 썼고, 주변 상인들은 불이 옮겨 붙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우왕좌왕 댔다.
건물 내부는 유독가스가 차오르고, 정전으로 암흑천지가 됐지만 한 상인은 점포 지하실에 보관한 현금통을 찾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샀다.
일부 얌체족들은 혼란한 틈을 타 상인들이 임시로 옮겨 놓은 물건을 훔치다 발각돼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대전지검은 화재 발생 4일 뒤 스펀지 창고에서 전기 화로로 라면을 끓여 먹은 뒤 전원을 끄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간 스펀지 직매점 직원 문모씨와 차모(여)씨를 중실화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시장 화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앙시장 화재가 발생한지 8시간 만인 21일 새벽 2시께에는 중앙시장 내 B동 3층 상가건물(광복사)에서 전기 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소방대가 신속히 진화에 나서면서 인근 건물로 옮겨 붙진 않았지만 주변 상인들은 놀란 가슴을 또 한 번 쓸어내려야만 했다.
중앙시장 화재는 소방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시장의 화재예방 및 진압 전반에 걸친 문제점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당시 중도일보가 보도한 4월22일자 기사내용에는 소방대의 초기 진화 실패 원인에 대해 `대전시내 소화전 시설 118개소 가운데 저수조와 급수탑 30개를 제외한 나머지 소화전이 40년 전에 설치한 낡은 시설로 고장나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등 대전시의 소화대책이 무방비 상태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 화재에 노출된 재래시장의 안전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됐다. 시장 건물 신축 시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기존 건물은 소방 당국의 점검으로 충분한 방화시설을 갖추도록 해 화재 대비의 안전도를 높여나가는 계기가 됐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사회적 고질병은 여전히 뿌리깊게 천착돼 있었다.
중앙시장 화재가 발생한 지 23년이 지난 뒤 1992년 3월 12일 오후 3시30분께 동구 중동 대전도매시장과 인접한 상가에서 불이나 건물 2개 동과 점포 144개를 태워 50억원(경찰 추산 8억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 피해액은 지역시장 화재 가운데 사상 최고액이다. 이 일대에서는 80년대에 들어서만 모두 5차례 크고 작은 불이 났다. 그 당시에도 중앙시장 내 상주하고 있던 소방차마저 정비불량으로 물을 뿌리지 못한데다 점포에 설치된 자체 소환전 역시 변압기가 과부하로 터지는 바람에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등 화재에 취약한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조양수 기자 coolj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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