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천민자본주의’를 생각하며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형권]‘천민자본주의’를 생각하며

[수요광장]이형권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08-09-23 00:00
  • 신문게재 2008-09-24 21면
  • 이형권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이형권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이형권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이형권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미국에서 발원한 금융 불안으로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요즈음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는 듯하다. 사람들은 미국의 금융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채권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 사태가 벌어지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볼 일이다. 유능한 의사는 표피적인 현상보다는 근원적이고 내발적인 측면에서 병인(病因)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 불안을 초래한 근원적 요인은 정부의 무책임과 금융업 종사자들의 윤리적 타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미국 정부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기조로 금융 산업을 방치해 왔다. 모든 것을 시장 자율에 맡겨버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애초부터 배타적 이익만을 창출하려는 기업에게 혜택을 주려는 특성을 지닌다. 당연히 신자유주의는 사적인 이익 때문에 공공의 이익이 침해당할 소지가 다분한 이념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업가들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셈이 되었다. 무려 7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국가 재원을 쏟아 부어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제 미국의 금융 시장은 이미 시장 자율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마치 고리대금업자처럼 무차별적으로 이익을 추구했던 미국 금융 회사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적절히 이루어졌다면, 더 큰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무모한 금융 처방을 내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긴급 처방이 미국의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 금융업자들의 자본에 대한 윤리적 건전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미국의 이번 금융 대란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월가를 떠돌고 있는 천민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국 금융 시장은 쉽사리 안정될 수 없을 뿐더러, 일시적인 안정이 온다 해도 위기는 다시 반복적으로 되풀이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금융업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며 돈 장사를 하다가 스스로 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금융 불안도 단지 미국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아직도 정경 유착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는 정경유착의 오랜 관행에 의해 자본주의가 성장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금융 회사들은 외국 금융 시장의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 보지도 않고 마치 호객 행위를 하듯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쳤다. 각종 주식이나 펀드에 대해 과장 광고를 하면서 마치 떼돈을 벌어줄 것처럼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갔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생산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윤리가 담보되지 않으면 매우 천박하고 불안한 시스템이다. 우리 사회의 자본의 윤리를 과연 미국 사회나 우리 와 비슷한 다른 나라들보다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 금융 불안을 겪고 있는 우리는 미국 탓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반성해 봐야 한다. 막스 베버가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유대인에게 부여했던 천민자본주의라는 명명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2. "내 아기 배냇저고리 직접 만들어요"
  3. "우리는 아직 청춘이야"-아산시 도고면 주민참여사업 인기
  4. (주)코엠에스. 아산공장 사옥 준공
  5. 아산시인주면-아름다운cc, 나눔문화 협약 체결
  1. (재)천안과학산업진흥원, 2024년 이차전지 제조공정 세미나 개최
  2. 천안문화재단, '한낮의 클래식 산책-클래식 히스토리 콘서트' 개최
  3. 충남 해양과학고 김태린·최가은 요트팀 '전국체전 우승'
  4. 천안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대응 총력
  5. 천안시, 직업소개사업자 정기 교육훈련 실시

헤드라인 뉴스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NH농협은행에서 15억 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NH농협은행은 25일 외부인의 사기에 따른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사고 금액은 15억 2530만 원, 사고 발생 기간은 지난해 3월 7일부터 11월 17일까지다. 손실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해당 차주는 서울의 한 영업점에서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고 부동산담보대출을 과도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이번 사고가 외부인에 의한 사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수사 결과에 따라 형사 고소나 고발을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수사기관..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은 자치구 방문행사로 대전 발전의 핵심 동력인 유성구를 찾아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을 통한 유성 발전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5일 유성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정용래 유성구청장과 구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8기 2년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자치구 현안과 구민 건의사항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8년만에 착공을 앞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을 설명했다. 이 시장은 "시에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무기력했고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평가받던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이 기본계획이 수립된지 28년만인 다음달 말..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이 2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특히 다음 달 유류세 인하 폭 축소가 예정되면서 운전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2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20∼24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리터당 1.47원 상승한 1593.06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유도 0.83원 오른 1422.31원으로 나타났다. 10월 둘째 주부터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지만, 상승 폭은 다소 둔화됐다. 대전·세종·충남지역 평균가격 추이도 비슷했다. 이들 3개 지역의 휘발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