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권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미국의 금융 불안을 초래한 근원적 요인은 정부의 무책임과 금융업 종사자들의 윤리적 타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미국 정부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기조로 금융 산업을 방치해 왔다. 모든 것을 시장 자율에 맡겨버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애초부터 배타적 이익만을 창출하려는 기업에게 혜택을 주려는 특성을 지닌다. 당연히 신자유주의는 사적인 이익 때문에 공공의 이익이 침해당할 소지가 다분한 이념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업가들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셈이 되었다. 무려 7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국가 재원을 쏟아 부어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제 미국의 금융 시장은 이미 시장 자율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마치 고리대금업자처럼 무차별적으로 이익을 추구했던 미국 금융 회사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적절히 이루어졌다면, 더 큰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무모한 금융 처방을 내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긴급 처방이 미국의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 금융업자들의 자본에 대한 윤리적 건전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미국의 이번 금융 대란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월가를 떠돌고 있는 천민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국 금융 시장은 쉽사리 안정될 수 없을 뿐더러, 일시적인 안정이 온다 해도 위기는 다시 반복적으로 되풀이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금융업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며 돈 장사를 하다가 스스로 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금융 불안도 단지 미국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은 아직도 정경 유착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는 정경유착의 오랜 관행에 의해 자본주의가 성장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적지 않은 금융 회사들은 외국 금융 시장의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 보지도 않고 마치 호객 행위를 하듯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쳤다. 각종 주식이나 펀드에 대해 과장 광고를 하면서 마치 떼돈을 벌어줄 것처럼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갔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생산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윤리가 담보되지 않으면 매우 천박하고 불안한 시스템이다. 우리 사회의 자본의 윤리를 과연 미국 사회나 우리 와 비슷한 다른 나라들보다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 금융 불안을 겪고 있는 우리는 미국 탓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반성해 봐야 한다. 막스 베버가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유대인에게 부여했던 천민자본주의라는 명명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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