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자치여론연구소 소장 |
물론, 현 행정구역체제가 1910년 한일합방 직후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있어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고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아 개편해야 한다는 것에는 필자도 공감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정치권 안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생각에는 지금논의 되고 있는 것들은 국민보다는 정치인을, 지방보다는 중앙을 위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보다 앞선 지방자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중앙정부와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으로 이루어진 지방행정 체제를 10개 안팎의 도(道)와 주(州)로 재정비하는 ‘지역주권형 도주제’를 추진하고 있고 독일은 16개 주(州)를 7-9개의 광역주로 개편논의가 한창이며, 프랑스는 현재 22개로 나뉘어진 지방행정단위를 6개의 대지역으로 통합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행정체제 개편을 통해 광역자치단체의 권한을 강화시킨다는 입장에서 볼때,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편안과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방행정구역 개편은 주민의 삶의 터전이자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지역사회 정체성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주민과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안에는 이런 주민의견수렴의 절차가 빠져있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런 개편논의의 출발점인 지역주의 타파는 행정구역의 문제보다는 중앙정치인들이 선거때마다 지역을 볼모로 이용한 결과이기에 타당성이 없다. 확실한 분권 로드맵(Road Map) 없는 지방정부의 단층화는 심각한 정보왜곡과 중앙집권을 가속화 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지방자치의 생명은 그 지역사회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고유색체를 나타내는 것이고 주민들의 의사가 지방행정에 반영되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금을 긋는 것은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이런 지방행정구역 개편논의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현 지방자치의 문제점은 지방분권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기에 이런 개편논의에 앞서 지방분권에 대한 확실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신중앙집권의 시나리오로 밖에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지방자치의 핵심은 효율성이 아니라 민주성에 있기에 이런 개편논의의 당사자인 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추진해야 한다. 셋째, 지방행정개편과 관련한 세계적인 추세는 행정단위(권역)를 광역화하는 것이 아니고 광역행정체제로 개편하는 것인 만큼 이것과도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개편논의는 당리당략(黨利黨略)과 집단이기주의에 강한 정치권에서 시작되는 것보다는 전문가그룹인 학계에서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최근, 나라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국내요인보다는 국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협력해서 경제살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이다. 지금과 같이 정치권과 학계,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행정구역개편 논의에 개별적이고 경쟁적으로 대응한다면 국익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국력손실과 갈등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장기적인 비젼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진행하는 혜안(慧眼)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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