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역사를 밝힌 페터 보르샤이트가 부유한 나라 국민일수록 움직이는 속도와 박자가 빠르다고 규정한 것에 상당히 공감하지만 이같이 속도가 가치가 된 강심장들에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특유의 조급증은 속도에 대해 공감대를 쉽게 형성한다. 한적한 교외에 나서 보라. 친절하게 반대 차선 차량들이 ‘단속 중’ 신호를 쏘아 주지 않은가. 언젠가 미국인이 캐묻기에 푸근한 우리네 인심이라고 설명했더니 자기네는 그러한 차량을 신고해 과속을 저지한다며 낯설어했던 풍경이다.
운전대 잡기가 무섭게 경주마처럼 되는 사람들이 있다. 경주마는 절뚝여도 달리고 콧구멍에서 피 뿜으면서 질주를 그치지 않는다. 다른 말에 안 처지려고 사력을 다한 말은 경주 뒤에 몸살이 나거나 심하게는 심장마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경마는 죽기를 작정하고 달리는 말 무리끼리의 경쟁에 편승한 것이다. 과속운전에는 얼마간 이와 비슷한 본능이 숨어 있다.
그리하여 쭉쭉빵빵 레이싱 모델이 없다 뿐, 고속도로는 자동차 경주장이 되고 말았다. 10억분의 1초를 다투는 세상은 속도 대중화를 낳았다. 영리한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단속 카메라만 피하고 과속하는 ‘캥거루 운전’이 일상다반사가 됐다. 차량 평균 속도로 과속 여부를 판단하는 구간단속 적발률이 지점단속의 7배 이상인 것은 그 수치화된 증거다. 속도에 대한 탐닉 내지 예속은 경찰청 자료로도 재확인됐다.
작년부터 어제까지 단속 카메라에 시속 200㎞ 이상으로 찍힌 차량은 자그마치 215대였다. 최고 과속은 신공항고속도로를 시속 252㎞로 주파한 외제차로 밝혀졌다. 이 정도면 템포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라 범죄 수준으로 치부할 광적인 충동성이며 광포한 질주본능이다. 차는 성능이 좋아지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니 무모한 질주본능을 억누르고 보다 더 안전본능을 강화시켜야 할 듯하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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