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선 공익적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풀뿌리사람들 상임이사 |
명일 바로 직전에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있는 분을 만나 점심을 같이했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먼저 도착한 이 분은 우리가 도착한지 20여분이 넘도록 전화 통화에 열중하느라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도서관 공사를 하기로 한 분이 공사를 못하겠다고 했단다. 사연인즉슨 견적서 낼 때보다 원자재 가격이 워낙 올라서 견적서대로는 공사를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9월 중에는 마을어린이도서관은 개관해야 하고 예산도 다 정해져 있는 상태인데 한 달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꺼낸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앙등으로 인한 부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자재가격 상승과 물가상승 국면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하청 중소기업에 납품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7년 중소기업의 생산원가는 13.2%가 인상 되었지만 납품 단가는 오히려 2.0% 낮아졌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원가 상승분을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중소기업들은 거래 중단이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비니니스 플랜드리’라더니 99%의 사업장과 88%의 고용을 책임지는 중소기업 문제에는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안이 없을까? 중소기업인 들이 요구하는 대안은 아주 소박하다. 납품가와 원자재가의 연동제를 시행해달라는 것이다. ‘납품가-원자재 연동제’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슈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원자재 가격 사전예고제’다. 중소기업이 제품 제조에 사용하는 시멘트, 선철, 아스팔트, 합성수지 등의 원자재는 대기업의 독점적 공급체제로 되어 있다. 그런대 대기업들이 원자재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할 뿐 아니라 심지어 원자재를 공급한 뒤에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관행을 고쳐달라는 것이다. 독점적으로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 인상 시에는 최소 30일전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견적서 내고 원자재 값이 올라 낭패를 겪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공정한 기준의 납품 원가 책정’이다. 원료가격이 상승 했으면 납품 단가에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중소기업들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도가 도입되면 원가가 올랐는데 오히려 납품가를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소망이다.
한마디로 내수 경기가 최악의 국면으로 가고 있다. 수출은 흔들리면서도 유지가 되고 있지만 수출대기업의 실적이 아무리 눈부셔도 이 실적이 내수로 연결되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수출로 내수를 못 살린다면 답은 하나 밖에 없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살려야 고용이 늘고 내수를 회복해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그래야 글로벌 인플레이션도 견디고 국민생활도 유지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을 표방하면서도 한국경제의 99%와 88%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을 외면한다면 한국경제의 위기는 돌이킬 수가 없다. 정부가 수출대기업 주도의 경제의 미련에 빠져서는 대안이 없다. 내수기반 경제, 중소기업을 살려 고용도 늘리고 내수도 살리는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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