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영 충남대 사회대 학장, 언론정보학과 교수 |
암울한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은 물론이고, 언론계 곳곳에서 들리는 파열음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특히 지역언론계는 새로운 기술 도입에 따른 매체구조의 변화로 이미 상당 기간 겪어온 어려움이 현 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는 과도한 시장주의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그동안 지역언론의 버팀목이 되었던 몇 가지 장치들을 제거하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9월 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년 12월까지 민영미디어렙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를 시정해달라는 광고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긴 하지만, 자칫 지역방송의 생존기반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조치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연계판매를 통해 지역방송을 비롯한 군소 방송사들의 광고를 일부 확보해주었는데, 민영미디어렙과 경쟁하게 될 경우 이 같은 영업방식은 더 이상 존속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9월 5일에는 언론학회 토론회에 참석했던 문화관광부 정책담당관이 오는 10월에 의원입법을 통해 신문지원기관 통폐합과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입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지역언론 종사자들은 이 같은 제도적 변화들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우선 신문지원기관 통폐합은 시작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 지역신문발전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을 위축시키거나 소멸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내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일반회계 전입금 130억 원을 전액 삭감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거대 중앙신문사에 방송 진출을 위한 문호를 열어줌으로써 여론 독과점을 가능케 하고 지역언론을 더욱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지난 4월에 공정거래위원장은 신문시장의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문고시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다. 신문고시는 독자 확보를 위해 과도한 경품과 무가지를 뿌려 전국 신문시장 질서를 어지럽혀온 거대 중앙신문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 장치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들에 의해 휘둘리는 한국신문협회의 의견을 듣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그것의 폐지 방침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이 같은 처사에는 정말 이 정부가 지역신문에 대해 일말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언론정책에는 절대적인 시장원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시장은 정부가 일정한 수준에서 개입하지 않을 경우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언론시장의 정글에서도 결국 덩치가 크고 힘센 ‘놈’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작고 약한 ‘놈’들은 내쳐지고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의 기초인 여론 다양성은 사라지고 우리 사회에는 전체주의의 기운이 더욱 왕성해질 것이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결코 언론시장을 정글 상태로 방치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시장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규제 장치를 마련하고 지역언론과 군소언론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선진 강국을 추구한다면,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선례를 따라 지역언론을 살리기 위한 정책에도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