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진]그들도 한때는 풋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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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그들도 한때는 풋풋하였다

[중도춘추]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08-09-11 00:00
  • 신문게재 2008-09-12 20면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지금은 어디로 치워버렸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가족이 꽤 오래 살았던 부모님의 단독주택 안방 텔레비전 위에는 부모님의 실로 풋풋했던 20대 모습이 낡은 액자에 담겨 있었다. 옷가게 점원이 ‘어쩜, 다리가 아직도 가늘고 예쁘세요.’라고 말하면 샐쭉이던 엄마의 흰 다리가 과감하게 드러난 미니스커트와, 지금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날렵한 허리선이 여봐란 듯이 사진에 남아 있었다. 먼 산을 응시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린 아버지나, 원피스와 가방, 그리고 펌프스힐을 매치시킨 어머니의 표정과 포즈는 여느 유명 모델 못지않은 것이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해봐도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지구상에서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겉절이를 버무리는 엄마와 새초롬한 20대 아가씨의 모습을 연결짓기 몹시 힘들어하는 내게, 아버지는 애틋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땐, 어떻게 보면 문희 같고, 어떻게 보면 윤정희 같고 그랬다, 네 엄마가.” 내친김에 아버지의 20대에 대해 물었을 때 어머니는, 정갈한 글씨체에 꽤나 달콤했던 아버지의 연애편지들과 마르고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 때문에 결혼식에서 친척들에게 한마디씩 들었다는 얘기들을 들려주셨다.

내가 생겨나기도 전, 남자와 여자로 만나 사랑했을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득함과 함께, 무엇인지 모를 따뜻함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아마 부모님이란 이름을 넘어 두 사람에 더 가깝게 다가갔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지나간 것들을 회상하고 싶을 때, 지나간 것들을 얘기하고 싶을 때 사진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을듯 하다. 사진은 현재를 사는 사람과 과거의 그 때를 잇는 매개체 구실을 톡톡히 한다. 지난 설 즈음해서 한 주간지는 명절을 맞이해 가족구성원을 인터뷰해보자는 화두를 던졌다. 무섭기만 한 할아버지, 도무지 말이 없으신 아버지, 잔소리만 하시는 어머니를 객관적 인터뷰 대상으로 정하고 그들의 지난 삶, 꿈, 실패와 기쁨 등을 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 기획에는 실제 학교 과제로, 또는 직업인 만화를 그리기 위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관찰한 얘기가 실려 있는데, 그들 모두 그 프로젝트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다는 평을 해주고 있었다. 옛날 앨범을 들추다 할아버지의 중학교 교복 입은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얘기를 들었던 대학생은 할아버지와 좀 더 친해진 느낌이라고 밝혔고, 아버지를 주제로 만화를 그리기 위해 아버지를 “몰래” 인터뷰하고 관찰했던 만화가는 아버지와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추석이다. 고소한 지짐과 말랑한 송편을 빚으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때이다. 아직도 취직이 안되고 있는 막내 걱정, 풀리지 않는 경제 걱정, 수능을 앞두고 있는 조카 걱정은 잠시 접고 머리를 맞대고 온 가족이 옛날 앨범을 들춰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부모님의 힘겨웠지만 알콩달콩했던 신혼 얘기를 덤으로 얻어, ‘와’하고 웃음이 터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추석은 없을 것이다. 벌써 마음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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