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우 대전광역시 행정부시장 |
유럽의 도시들은 건축물을 비롯하여 역사적인 문화재, 도로 등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삶의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라 데팡스(La Defence) 프로젝트는 집단 공동체와 개인의 창의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프랑스가 1958년부터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도시개발 프로젝트인 라 데팡스는 유럽 최대 규모의 비즈니스 파크다.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파리 도심의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라 데팡스는 새로운 주거 공간의 확충이라는 종래의 개발개념을 탈피하여 업무기능의 조성을 목표로 한 경제지향적인 신도시의 전형이다.
이 곳에는 세계무역센터 등의 업무시설을 비롯하여 상업시설, 주거시설, 전시 회의시설, 박물관 ` 아이맥스 영화관과 같은 문화시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형태가 저마다의 개성과 뛰어난 조형미를 갖고 있는데다가 각각의 건물이 난간식 통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림에서나 보아왔던 이상적인 미래 도시를 연상시켰다. 흡사 건물 사이로 날아다니는 미래형 자동차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 나올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라 데팡스의 전경은 경이로웠다.
라 데팡스가 던지는 문화적인 충격은 조형미가 뛰어난 모던한 건축물이나 품격과 실용성을 겸비한 다양한 도시 기능의 집합체로서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통의 숨결과 미래 지향적인 상상력의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라 데팡스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그레이트 아치는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높이 110m, 폭 106m의 열린 입방체 구조물인 그레이트 아치는 에펠탑과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파리를 상징해 온 개선문을 현대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미래 인류를 위한 희망의 심벌로서 세계를 향한 창을 표현한 것이다.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과거의 뿌리를 고스란히 간직한 그레이트 아치 앞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감동을 맛보면서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고 있는 ‘우리 것’에 대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현재 우리는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불과 100여년도 채 되지 않는 서구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사회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의식주 전반이 외래문화에 침잠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전통 가치는 묵은 것으로 치부해 저만치 뒷전으로 밀쳐버리고, 천박하다고 할 정도로 서구적 가치를 앞세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를 무대로 우리의 시각을 넓혀 국가와 민족의 번영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고유의 독자성과 전통이 없는 문화는 단지 모방을 극복하지 못한 ‘짝퉁’일 뿐이다.
복잡한 정치적 구도의 영향 아래 저마다의 발전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시도 간 경쟁에 있어서나 인재양성과 과학기술투자를 기반으로 국제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할 장기적인 국가 경영과제의 추진에 있어서도 룰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럽, 미국, 중국 등 다국화 시대의 세찬 물결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면서 새로운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곧 민족 명절 한가위를 맞는다. 올 추석에도 천만 이상의 귀성객이 조상의 얼과 문화, 가족 공동체의 뿌리를 찾아 이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공동체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혜안과 비전의 좌표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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