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문화동 보급창 운집 ‘육군 병참 콤플렉스’ 두각
80~90년대 계룡대.자운대 등 건설 軍 근간 자리매김
▲ 1990년대 논산 제2훈련소 신병교육수료식 모습(현재 육군훈련소). |
1980~90년대 사이 계룡대와 자운대 등이 자리잡기 이전, 한국전쟁을 전·후해 창설된 군사 기구들이 대전을 비롯한 충남지역에 속속 들어서면서 이미 그 기틀을 다져온 것이다. 특히 대전·충남 지역은 이때부터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을 바탕으로 각종 군 교육 시설과 군의 핵심 집단이 밀집해 있는 지역적 특성을 보여 왔다.
전쟁 이후 가장 먼저 대전에 들어선 것은 1956년 9월 15일 창설된 공군기술교육단이었다. 공군기술교육단이 들어선 곳은 당시 대덕군 유천면 둔산리 둔지미 마을(지금의 서구 둔산동)로, 이곳에는 이미 일제강점기 말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대전비행장이 위치해 있어 공군 교육 시설로서는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이후 지금의 둔산동 일대는 도시 개발이 진행되기 이전까지 공군교육사령부와 함께 제3관구사령부와 육군통신학교 등 다수의 국방 시설이 밀집돼 있던 지역이었다.
이때 대전에는 둔산동 뿐 아니라 중구 문화동 일대에도 육군병참학교 등 여러 군사 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 전쟁 발발과 함께 대전으로 이동한 육군병참학교는 전쟁 중 잠시 부산으로 옮겼다 이후 다시 이곳에 자리를 잡았으며, 후일 문화동 일대에는 제5보급창과 9병참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육군 병참 콤플렉스`가 건설되기도 한다.
또 1956년 10월 10일에는 1960년 해체된 교육총본부가 광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해 왔으며, 그 이전에도 논산 등 대전 인근의 시군에는 육군 제2훈련소 등이 창설돼 있었다.
1952년 5월 3일 전쟁 중에 신병 양성을 위해 창설된 육군훈련소가 논산시 연무읍 지금의 자리에 위치한 배경에는 이 곳이 군사적 명당 자리라는 풍수지리적 이유가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일설에 의하면 당시 ‘병아리뜰`로 불리던 이 지역의 명칭이 곧 바로 신병훈련소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이와 함께 1955년에는 32사단이 창설돼 조치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듯 한국전쟁을 전·후해 속속 자리했던 군사시설들은 도시의 팽창과 함께 이전이 시작된다. 제5보급창을 제외한 육군병참학교 등 문화동 일대에 위치해 있던 군사 시설은 대부분 1970년대 후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갔으며, 제5보급창 자리에도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둔산 일대에 있던 시설들도 1980년대 후반 ‘둔산지구 개발`이 시작되면서 모두 자리를 옮겼다.
대전과 충남에 위치해 있던 수많은 국방 시설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 지역이 가지는 군사적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후 또 다른 군 핵심 시설의 입지를 통해 국방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오주영·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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