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백겸(시인·대전.충남 작가회의 회장) |
내 현실이 어렵거나 불안한 마음으로 꾸는 꿈들이 있다. 옛집을 찾아가는 길은 미로처럼 어렵다. 길은 도시 재개발로 없어지고 바뀌어서 나는 옛 길을 간신히 기억에 의지해서 찾아간다. 그 새 집의 울타리가 바뀌고 집의 방은 부모님이 이사를 가고 안 계시다. 연락처도 없는 텅 빈집은 고요하다. 나는 버림받은 고아처럼 당황한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실존의 위기에서 꾸는 꿈이 기억난다. 역시 옛집이 배경이다. 부모님을 만나 나이든 내가 체면도 없이 설움에 겨워 울었더니 부모님의 얼굴이 황금빛으로 빛나면서 웃고 있다. 꿈 속에서도 그 메시지는 저 세상에서 보는 이승의 삶은 꿈이자 학습이니 마음상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내 개인의 신상에 변동이 생기면 대체로 나는 미리 꿈속에서 암시를 받는다. 옛집의 테마도 단골로 등장하고 다른 상황을 매개로 한 꿈도 자주 꾼다.
꿈이 우리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꿈에 대한 과학의 연구는 생리적 메커니즘만 연구되어 있을 뿐 꿈의 정신적인 측면은 과거의 전승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예지몽이나 태몽같이 예언에 관한 꿈이 특히 그렇다.
피타고라스는 수면 중의 영혼은 육체의 무덤을 벗어나 다른 차원의 존재를 지각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르페우스 신비교리와 이집트에서 문화에서 유래한 이런 태도는 신플라톤주의자 및 영지주의자와 근세의 신지학파까지 이어졌다.
창세기에서 야곱이 꿈에 사다리를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서 야훼의 천사와 씨름을 하고 미래의 축복을 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형제들에게 군림하는 꿈을 꾸고 질시를 받았으나 운명은 꿈대로 흘러갔다.
말레이시아의 고원부족인 세노이부족은 자신들의 꿈에 들어있는 영적인 세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인디언부족은 꿈은 영혼의 언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샤먼이나 추장은 꿈을 통해 부족의 운명을 예시 받는다.
이러한 세계관은 꿈이란 깨어있을 때의 이미지들이 뒤섞인 욕망의 반영이며 깨어있는 상태가 현실이라 믿는 서구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반대된다. 프로이드는 꿈을 정신활동의 왜곡된 형태로 보고 환자의 노이로제 증세를 치료하는 수단으로 보았으나 칼 융은 꿈을 무의식의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표현으로 보았다. 두 체계의 임상사례를 인정한다면 꿈은 이 모든 측면을 포함한 보다 복잡한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에 의하면 자연은 선택을 통해 생존에 필요하지 않는 시스템은 도태시킨다고 한다. 인간정신의 꿈은 실재에 부합하는 존재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작가이므로 백일몽도 많다. 예술이란 일종의 꿈의 언어이다. 현실이 아닌 가능성의 세계를 드러내는 일이며 예술가는 꿈의 세계를 문자나 소리 색채의 언어를 통해 드러낸다. 밤에 꿈을 꾸는 개인은 모두 아마추어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문화교육이 낮의 예술가인 프로 예술가를 배출하는데 이들은 꿈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보다 세계에 관한 진실을 보다 많이 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김백겸 시인·대전.충남 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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