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대전과 청주 등지를 방문해 시민들과 생명의 물줄기 따라 걷기 행사에 참가했을 때 폴 콜먼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구를 걷는 사람이라는 별명에 딱 어울리게 발길 스치는 곳마다 굵직한 메시지를 남긴 그의 행보를 보며 산과 강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길을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제(2일) 청주 원흥이 방죽을 두 번째로 찾은 콜먼은 “시뻘겋던 공사장이 초록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에서 개발과 보전의 예를 봤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산남 3택지개발지구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두꺼비 서식지에 실개천까지 만들어 조성한 생태공원에 가보면 이 세계적인 환경운동가가 성공 사례로 극찬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걸어다니는 환경전도사답게 콜먼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나무를 심는다. 두꺼비공원에도 화살나무를 심었고 그 며칠 전에는 홍성군청 안회당 뒤편에 기념식수를 했다. 그러나 그저 숫자 채우기가 아니었다. 또 지난 세기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1억 그루 나무 심기 등 환경과 평화운동을 접목한다. 콜먼에게 전쟁은 땅과 하늘과 바다의 생명체에 치명상을 입히는 거대한 환경 테러일 뿐이다. 물, 지구, 환경, 평화는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환경과 생명이, 생명과 평화가 어찌 다른 것이겠는가.
개발이란 그런 점에서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콜먼이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못 보는 특별한 곳”이라던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사진>도 그런 경우다. 가로수길이 훼손되면 “그저 그런 흔한 도시가 된다”는 그의 걱정은 개발주의적 지역관을 생태문화적 지역관으로 바꾸자는 말로 들렸다.
이전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개발이면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발전이다. 난개발, 막개발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좋지 않은데 좋다 하거나 나쁘지 않은데 나쁘다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집착이고, 집착의 결과가 좋을 수 없다. 치수 위주로 정비해서 썩은 하천을 남긴 사례에서 얻은 뒤늦은 교훈처럼 방법이 중요하다.
환경에 과학적 접근과 통합 관리가 요구되는 건 그래서다. 수질 보전, 가령 ‘그린시티`를 표방하는 대전시 맑은 물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비위생적인 물을 마시고 산다. 유엔 보고서가 잘못된 관리, 적절한 기구 부족, 관료주의 타성, 부패를 열악한 물 상황의 원인으로 꼽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환경이든 개발이든 좋지 않은 집착을 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청주에서 콜먼이 “자연과 인간 상생이 미래의 희망”이라며 전해준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개발에 앞서 생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나란히 생각하면 균형론과 불균형론도 더 잘 보인다. 두꺼비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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