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훈 배재대 총장.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
필자처럼 50대 중반인 사람들은 어릴 때 직접적으로 외국원조를 경험하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배고픔을 참고 초등학교에 가서 전지분유와 빵으로 허기를 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조가 충분치 않아 출석인원에 맞춰 나눠주다 보니, 형편이 좀 더 어려운 학생이 당번이라도 맡으면 어떻게 하든 결석한 인원 몫까지 받아와 집에 있는 동생을 주기도 했다. 미군에게 초콜릿을 얻기 위해 달리는 군용트럭을 ?아 가기도 했다.
이처럼 가슴 아픈 추억은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종종 되살아나곤 한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유명 관광지를 찾을 때면 어린아이들이 고사리 손을 내밀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매우 흔하다. 옛날 생각이 나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하면 어디에 있었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곤란한 처지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에 가서 배움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굶주림을 해결하고 가족의 생계도 보태야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마저 갖게 한다.
이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모습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처한 여건은 조금 다르다 할지라도 아직도 배고픔에 힘들어하고 사회적 정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 많다. 구청과 시 · 군에 소속된 사회복지사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은 물론 학교에서 급식지원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독자들은 아마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대전시교육청 관내 결식아동만 해도 2만여 명에 이른다. 또한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민간 사회복지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는 장애우까지 합한다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우리의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국민을 구제하는 일은 국가가 우선 책임을 져야한다. 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빈부격차를 줄이는 각종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국가에만 의존할 수 없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는 일정부문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담당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각 지자체마다 사랑의 온도계를 설치하고 모금운동에 나선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이벤트성 행사는 그 기간에만 반짝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의 사정은 특정한 시기뿐만 아니라 연중 꾸준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점을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이웃사랑의 실천은 몇몇 잘사는 부자나 기업인들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 마음은 있어도 선뜻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다. ‘티끌모아 태산이 된다`라는 말처럼 보통 시민들이 너도나도 이웃사랑에 동참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기부도 아름다운 버릇이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나눔을 실천하는 습관이 들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기부자들이 기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기부자를 우대하고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사회적으로 기부자를 존중하고, 기부자와 수혜자를 직접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도움과 역할이 절실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가 찾아왔다. 경기침체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지만, 이럴 때 일수록 한번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눔의 기쁨은 실천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나눔은 이 사회에 희망을 심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매월 12일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정한 ‘나눔의 날`이다. 이번 달은 공교롭게도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바로 전날이다. 나눔을 통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풍성함을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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