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
대한민국이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세운지 6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일단 새삼스러웠고,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뤄냈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1960년대 초 100달러도 채 안 되던 국민소득을 200배가 넘는 2만달러로 끌어 올렸으니, 세계가 망설임 없이 ‘기적’이라는 찬사를 보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600년 동안 해 낸 것 이상의 발전을 60년만에 이뤄낸 우리. 그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두뇌인력과 교육열, 적극적이고 유연성있는 국민성도 중요했지만, 강력한 과학기술 드라이브 정책으로 이러한 국민적 특성을 과학기술에 집중시킨 정부의 노력이 핵심이었다고 본다.
특히 과학기술 지식정보인프라 구축의 역할은 더욱 컸다. R&D 전 과정에서 정보를 획득하는데 드는 시간이 무려 50%에 가깝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된 바다. 연구에만 몰입해도 세계를 따라잡을까 말까한 데, 해당 연구에 필요한 기초자료와 연구의 방향을 잡기 위한 동향 정보 등을 수집해 활용하는데 절반 가까이 되는 시간을 써야하는 연구자들로서는 이만저만 애로가 큰 게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간 정부는 광범위한 지식정보를 모으고, 연구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분석정보를 만들어내고, 연구자의 특성에 맞는 맞춤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오로지 R&D에만 올인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극빈국 수준의 나라에서 아프리카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출을 하는 대국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지식정보’라는 보이지 않는 저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기존의 지식정보인프라 구축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보 자체가 부족해 밤잠 안자고 뛰어가며 정보를 수집하던 시절이 나았을지 모른다. ‘물이 넘쳐 홍수가 날 때 가장 부족한 것이 물이다’라는 말처럼, 정보는 넘쳐나는데 연구자 자신의 R&D에 딱 맞아떨어지는 진짜 정보를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지식포럼 짐 데이비스 부회장이 ‘정보가 두 배로 늘어나는 기간이 2007년에는 11개월이었으나 2010년에는 단지 11시간으로 짧아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정보는 연구자들에게 더욱 버거운 짐이 되고 있다. 국가차원의 과학기술 지식정보인프라 구축이 더욱 중요해 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변화는 곧 기회다. 이제 방만한 지식정보의 수집은 의미가 없다. 일단 첨단 정보분석을 통해 미래예측 기술을 개발하고 이것을 가지고 국가의 미래를 먹여 살릴 기술, 사업화를 통해 큰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술을 선택한 후, 이 기술들을 급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정보인프라를 집중 구축해야 한다. 또한 국가차원의 거시적인 정책과 발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최근 정부가 R&D 투자 GDP 5%, 7대 기술 분야 집중 육성, 7대 시스템 효율화를 통해 과학기술 7대 강국의 반열에 오르겠다고 발표한 이른바 ‘577 전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탄탄한 정보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과학기술은 국가발전의 모태이며 그 과학기술의 뿌리는 다음 아닌 지식정보다. 뿌리가 땅 깊숙이 자리 잡아 탄탄하게 지탱해주지 않으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듯 국가의 장밋빛 청사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과학기술 지식정보인프라를 굳건히 세워야만 한다.
며칠 전 우연히 과일전에 놓인 탐스러운 붉은 햇사과를 본 적이 있다. 결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선진입국이라는 결실을 코앞에 두고 있다. 보다 더 성공적으로, 더욱 빨리 결실을 수확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지식정보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와 정책결정자 그리고 국민 모두의 관심과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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