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 상 현 조이소아병원장 |
그때는 집 앞 신작로에는 흙먼지가 펄펄 날리었고 지루한 장마철에는 어김없이 대전천의 물이 범람하기도 하고 범란 직전까지 흙탕물이 무섭게 흐르는 가운데 수박이 둥둥, 돼지가 꽥꽥 거리며 떠내려갔으며, 특선을 쓰지 않으면 낮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전화는 몇 집에 한 대꼴로 귀한 물건이었었다.
부사동으로 이사를 가서 문창초등학교(현 문창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산내면 알바우 라는 곳으로 헤엄치러 또는 멱 감으로 다녔고, 토성처럼 만들어놓은 공설운동장(현 한밭운동장)야구장에 고인 흙탕물에서는 거머리에 뜯겨가면서도 좋아라 물장구치며 놀았다. 대사동으로 이사 와서는 노는 무대가 보문산으로 바뀌었고 시루봉, 성터, 전망대등은 우리의 놀이터 였었다.
칡을 캐다 산감(산림감시원)에게 걸려서 삽과 곡괭이, 톱 등을 모두 빼앗긴 적도 있었지만 나무 심으러 식목일만 되면 보문산에 가서 심었던 나무들이 이제는 산을 그릴 때 초록색(그 당시에는 산에 나무가 없어서 산을 고동색으로 그렸음)으로 그릴만큼 산림이 우거진 모습을 보면 나이 육십이 거저먹은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대전을 중심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의 하나라면 너무 커져버린 시세일 것이다. 이제는 유성이 끝자락이나 동구의 끝자락에서는 길도 잘 못 찾을 정도로 넓어지고, 거리에서 아는 이를 만나는 일이 드믈 정도로 인구도 많아졌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대도시가 그렇듯이 대전 하면 떠오르는 걸 맞는 이미지가 없다. 어려서 배울 때는 대전이 삼남의 관문으로 교통의 중심지란 적이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 인지 교육도시란 말도 있었으며, 군사도시란 말도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청사가 들어서며 행정도시, 연구 단지가 들어서며 과학의 도시라고도 하지만 어느 하나 대전을 대표할 만한 이름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용어가 있다면 ‘엑스포의 도시`정도가 아닐까? 대도시들이 어느 한쪽으로만 편향되게 발전될 수는 없지만 특성이 없는 것만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대전이 세종 신도시의 위성도시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낳게 된다. 예로부터 부귀영화라고 하여 돈이 있어야 행세를 하고 행세를 해야 귀함을 받고 귀함을 받아야 영화를 누린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전에는 돈이 없다. 이렇다 할 대표 기업도 없고, 일자리 될 만한 직장도 없고, 돈 될 만한 시장도 없다. 왜 대전에는 대전의 비전을 보일만한 불루 프로젝트가 없는 것일까? 우선 인재가 없는 것 같다. 대전의 인재는 다 빠져나가고, 대전과 친한 세력가도 없는 것 같고, 대전이 너무 좁다.
그러니 돈 있는 대기업이 있으면 좋겠고 그러면 자연히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인재가 꼬일 것이고 인재가 꼬이면 세력이 형성될 것이고 세력이 형성되면 대전이 색깔 있는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대전은 남한의 중심지이다. 지정학적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남한의 인적 물적 흐름의 중심적인 역할을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너무 좁아서일까? 우리 대전이 가진 장점은 너무 많다.
물도 많고, 교통망도 잘 되어있고, 또한 위치가 기막히게 좋다. 이런 이유는 여러 기업들의 유혹적인 장점이 되지 않을까. 인생은 60부터란 말이 있듯이 이제 대전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그래서 향후 대전이 한반도 남쪽의 맹주역할을 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이 없다면 대전 토박이인 나는 왠지 부아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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