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그녀들의 젖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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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그녀들의 젖가슴

  • 승인 2008-08-28 00:00
  • 신문게재 2008-08-29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요즘 나를 가벼운(또는 무거운) 충격에 빠뜨린 네 여성이 있다. 첫 번째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두 번째는 송아지에게 젖먹이는 TV 아나운서, 세 번째는 천안의 말레이시아 이주여성 우이비훈. 네 번째는 야유하던 남자들에게 젖을 드러내놓고 당신들도 먹고 싶으냐고 당당히 물었던 소저너 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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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그녀만큼 인간의 고통을 잘 그려낸 화가는 전무후무하다고 단언한다. 덕수궁미술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에 가면 그 참을 수 없이 차가운 의식과 대면할 수 있다. 「유모와 나」에 그려진 모성 부재의 자의식은 쇼킹 그것이다.

유모 가슴과 하늘에서 비 내리듯 쏟아지는 젖, 하지만 기대했던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유선(乳腺)이 투시된 대지의 여신이 젖 물리는 장면은 연년생 동생 크리스티나의 탄생으로 ‘미처 다 빨기도 전에 떼어놓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기억을 그려낸다.

두 번째는 모유를 송아지에 먹이는 다큐멘터리 장면의 여성이다. 이름은 잊었지만 TV 아나운서가 모유 수유를 거들려고 찍은 홍보물이었다. “나는 언론인으로서 젖가슴에서 우유가 나오는 걸 사람들이 믿게 해주려고 찍었다.” 그녀 말에 중언부언 보태고 싶지 않다.

세 번째 주인공은 말레이시아 출신 우이비훈. 본지에도 소개된 그녀의 사연은 그저 그럴지 모르지만 감동이다. ‘천안시 엄마 젖 먹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에서 아이가 최고 건강아로 뽑힌 다문화가정 여성이다.

이들 세 여성은 소(우유)나 물소, 염소나 낙타젖을 물리는 인간에게 각자가 선 위치에서 경종을 울린다. 사람마다 락토오스 분해 능력이 다른 것처럼(유럽인 20∼40%, 검은 미국인의 90%, 인디언의 대부분은 우유를 잘 못 먹는다. 한국인은 중간쯤.) 이들을 대하는 느낌이 상이할 수는 있다.

▲ 프리다 칼로, <유모와 나 My Nanny and I>, 1937, 금속판에 유채, 30.5×34.7㎝
▲ 프리다 칼로, <유모와 나 My Nanny and I>, 1937, 금속판에 유채, 30.5×34.7㎝
장 자크 루소가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고 의심의 여지없는 의무로 공언했지만 우유는 출산 후 일정기간 나오는 한정식품이다. 젖이 부족한 경우나 신분 과시용으로 고대부터 유모제도가 있었다. 우리 역사에도 유모 젖 먹고 큰 왕들이 많다. 한 세기 전 출판된 『악마의 사전』에는 인간등급을 분류하며 이 제도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유모 육아 관행이 자취를 감춘 결정적 계기는 젖병 등장이다.

그런데 워킹맘을 중심으로 우유 먹이기가 당연시됐던 풍조도 이제 바뀌고 있다. 국내 모유 수유율은 25%를 넘나들지만 2000년 초 10%에 비해 의미 있는 변화다. 인류사를 관류한 탄력 있는 가슴에의 욕망을 버리고 자신감, 당당함을 취한 여성이 늘고 있다.

문제는 모유 수유에 대한 배려 환경. 레스토랑에서 젖을 물리다가 화장실로 내몰렸다는 데서 보듯 모유가 엄마와 아이에게 좋다는 관심 환기 이전에 엄마젖을 마음대로 먹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구비가 급선무다.

아, 네 번째. 소저너 트루스를 잊을 뻔했다. 19세기 미국 실존인물인 그녀의 젖가슴은 그야말로 자존심과 용기의 심벌이다. 흑인 아들을 찾아 헤매던 트루스는 그녀를 남자라며 희롱하는 사내들에게 묻는다. 젖을 내놓고. “댁들도 내 젖 먹고 싶으세요?”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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