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정림(定林)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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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정림(定林)을 꿈꾸다

  • 승인 2008-08-21 00:00
  • 신문게재 2008-08-22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보문산 숲길에 내 멋대로 붙인 베르테르로(路). 닉네임을 딴 이름에 이정표가 있을 리 없지만 가끔 이 길을 산책하며 어지러운 머리와 험해진 입을 씻는다. 녹지 밀도가 학교폭력과 반비례한다는 일본 환경당국의 보고는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와 숲의 가치는 이 이상 논하지 않아도 된다.


충남도가 부여 백제역사재현단지에 조성할 ‘정림(定林)’이란 숲은 역사적 프리미엄까지 갖고 있다. 정림사지에서 나온 ‘정림’― 어렵지 않게 신라의 상징 숲인 경주 왕경(王京) 숲이 눈앞에 그려진다.

정림의 주력 수종이 될 소나무를 보자. 태어나서 금줄에 솔가지를 썼고 궁하던 시절에 껍질 벗겨 연명했으며 추울 땐 기꺼이 연료가 되어줬다. 일생을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다 소나무 우거진 음택으로 향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런 원형 체험이 있기에 낙락장송을 보면 모자 벗고 꾸벅 절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정림이란 이름이 더 반가운 것은 폐허의 역사를 지키는 부여의 새 아이콘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다. 우울한 패전국 콤플렉스 탈피가 백제 부활의 단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낙화암을 멸망의 상징에서 백제문화의 꽃으로 승화시킬 때 문화왕국 백제는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도 정림은 사비 고유의 숲이어야 할 것이다. 그곳 정림은 부소산성, 백마강, 수북정, 궁남지,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등과 어우러져 도보로도 관람 가능한 기존 이동공간을 확장하는 곳이어야 하며 도시 전체 이미지 측면으로는 교차하는 지점, 모이는 결절점(結節點) 같은 마디여야 한다고 본다.

거기에다 옛 도성을 숲과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 낙화암 벼랑 끝의 소나무 한 그루에도 역사가 묻어난다. 육당 최남선은 “보드랍고 훗훗하고 정답고 알뜰한 맛은 부여 아닌 다른 옛 도읍에서 도무지 얻어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부여의 매력을 논했다. 정림은 그런 부여의 부여다운 맛을 가미하는 요소가 돼야 한다.

오래되고도 새로운, 숲이 주는 미덕에 기대 정림의 경관에서 잠시 유토피아에 젖는다면 그도 나쁘지 않다. 먹을거리가 쏟아지는 밥그릇을 갈무리하고 있을 대전 식장산(食藏山)을 대하면 배가 불러오듯 말이다. 정림 속을 걸으면 백제인이 된 것 같은 감정이 샘솟게 하라. 쉽게 만들면 안 되는 숲이 정림이란 뜻이다.

소나무 간택도 잘해야 한다. 조성용 소나무는 높이 8m, 직경 30㎝ 이상으로 충남도민이나 시.군의 기증에 주로 의존한다는 계획이다. 안면송 등 지역 소나무만이 아니라, 식생조건을 고려하면서 강릉 금강소나무, 영월 청령포 소나무, 속리산 소나무, 전라도 춘향목 등 전국 유명 소나무들을 두루 물색해보기 바란다.

주의할 사항은 완결된 모습을 빨리 보일 욕심에 큰 나무만 이식하다간 서울 올림픽공원처럼 나무들의 공동묘지 되기에 십상 알맞다는 점이다. 가꾸면서 보완해 나가야 정림의 조경 가치도 올라간다. 서 있는 나무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정림의 솔바람 소리 들으며 나이테 하나씩 더할 그날을 기다린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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