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과연 길 안 떠나고 견뎌낼가? 여행시즌이 시작됐다.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마음에 거듭거듭 새겨 넣는다. 열다섯 살짜리 보살펴야 한다고 말이다. 누구냐고? 여름을 겁내는 자다. 우리 집 치와와다. 탕감으로 인간 입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 내세에 식인종으로 태워나지 않게 지키마. 마음이 통했는지 쌕쌕거리며 잘도 잔다.
기름 값이 많이도 올랐다. 승용차 가끔 세워둔다. 버스 탄다. 한 주에 두세 번 정도다. 우선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경쾌하다. 동행이 있어서다. 이런저런 얘기가 달콤하다.
귀하의 귀가 솔깃해진다. 묘령의 여인과 즐긴다 생각한다. 당신은 그저 보통사람이라 그렇다. 오해하지 마시라. 상상하듯 질 나쁜 연애가 아니다. 집사람과 함께 간다. 정류장에서도 즐겁다. 의자에 나란히 앉는다. 버스 기다리고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본다. 일터 나가는 살사 댄서가 내린다. 등이 보이고 옆구리 터진 치마를 늘 입어 붙인 별명이다.
우유공장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아침인사 나눈다. 모란시장 가는 차가 왔다. 지각대장 청년이 달려와 탄다. 쇠스랑 들고 밭에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드디어 내가 탈 직행좌석이 온다. 이 한 사십분 안팎이 황금시간이다. 대화가 풍성하다. 하루시작이 상쾌하다. 칠월 중순경부터 정류장 풍경이 달라졌다. 공항행 리무진 승객이 많아졌다. 신규 참가자가 대거 출현했다.
들뜬 목소리가 파도처럼 귓전을 때린다. 부부가 커다란 가방 들고 기다린다. 가족이 무거운 짐 바리바리 들고 서성거린다. 여행 가는구나. 처음 가나. 왜 저렇게 왔다갔다 야단이야. 그 무렵 이후 아내의 입이 무거워졌다. 가고 싶은 거다. 밥하고 빨래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거다. 나는 다짐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굳건하게 버텨나가자 한다. 어제 터졌다. 거실 나비장은 김 여사의 보물창고다. 날마다 정리한다. 궁금해서 기웃거린다. 저리 가라 한다. 이것 샀기 때문에 여행 못 간다 하고선 뭘 보느냐 한다. 언제 그런 말 했던가?
변화는 새벽 정류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세차 아주머니도 며칠 쉰다는 쪽지를 남겼다. 영구도 놀러간다며 내일 점심에 나가지 못 한다 했다. 다들 떠난다. 우리만 안 떠나고 있다. 가야하지 않겠는가. 일상은 그저 그런 하찮은 일투성이라고 큰소리쳐도 좋지 않은가. 지금 부재중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아 보라. 세상과 사무실은 여전히 잘 굴러 가지 않는가. 여름만이라도 유혹에 빠져보자. 무엇이 발목을 잡고 있는가. 없다. 괜한 계산이다. 수입과 지출을 맞추려 한다고? 여름에 좀 과용하자. 대신 올 가을에도 작년 옷 또 걸치면 된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너무 골몰한다. 목숨 걸어야 대상인 듯이 대든다. 그러면서도 정작 귀중한 가치는 소홀히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다. 서면 바닷가에 재팔이네 백반집이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지팔이네 매운탕 집이 있다. 가게이름 짓기가 난감해서 불가피하게 택했다. 아니다. 그건 결코 아니다.
유대감이 담겨있다. 꿈이 서려있다. 함께 있을 수 있을 때 같이 있어야 가족이다. 식솔 대동하고 떠나야겠다. 실수도 거침없이 해서 아버지의 허점도 보여야겠다. 박장대소한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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