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종]욕심의 허물을 벗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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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종]욕심의 허물을 벗어버리자

[목요세평]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

  • 승인 2008-08-20 00:00
  • 신문게재 2008-08-21 20면
  • 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
▲ 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
▲ 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
푹푹 삶아대는 더위로 모두가 지쳐가는 여름 한복판이다. 잠시 여름잠을 자는 짐승이라도 되어 더위를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더위에도 빼어난 자태로 모두를 홀리며 피어나는 꽃이 있다. 연꽃이다. 길섶에 핀 온갖 꽃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지쳐있건만 연꽃은 시간마다 그 꽃잎을 열고 자태를 빛내고 있다.

기품과 요염함을 동시에 지닌 그 꽃을 보려고 그늘마저 없는 연꽃정원을 찾아 나섰다. 어쩌면 귀한 손녀와의 나들이기에 나를 용감하게 했지만, 모처럼 제대로 보게 된 연꽃의 그 모습도 더위를 참아낼 만한 가치는 있었다. 꽃송이 안에 열매를 품고 있는 모습이며, 꼭꼭 맺힌 씨앗을 띄우고는 가만히 슬어져 내리는 꽃잎이랑 참으로 생각에 빠지게 하는 꽃이다. 또한 물에 떠서 피는 꽃, 살짝 절반만 물 밖으로 몸을 내놓은 꽃, 키가 사람만한 꽃이며 그 가지가지 빛깔이며 자태는 아름다움을 지나 신기롭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 멋진 모습에 그만 마음이 갑자기 애처럼 호들갑스러워졌다.

"인경아, 와 예쁘다. 신기하다 그지? 이게 씨앗이야. 한 번 만져 봐."
"안 돼요, 할아버지. 만지면 꽃이 싫어해요."
"응 그렇구나, 미안해. 할아버지가 몰랐어."

나는 순간 무안해져서 손녀의 손을 잡고 얼른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등으로 햇살을 통과한 꽃잎이 한없이 투명하게 신비한 모습 앞에서 발이 멈춰 섰다. 나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나가며 또 쓸어 보려 했다. 막 들어 올리는 손길을 손녀애가 가만히 잡는다.

"할아버지, 꽃이 귀찮아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꽃은 눈으로만 보랬어요. 만지면 꽃이 금방 죽는대요."
"그러게, 할아버지가 인경이보다도 못하구나. 안 그럴게. 잘못했어요."

문득 손녀 앞에서 바보가 된 나의 애만도 못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번엔 하얀 연꽃이 수백송이 만개한 사이로 나무와 돌로 만든 조붓한 물위의 오솔길로 들어섰다. 한 줄의 실오라기 박하 분향기가 살살 코끝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향기를 더욱 깊게 마시려고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여 코끝을 꽃잎으로 가까이했다.

"아이고, 인경아 이 향기 좀 맡아 봐. 정말 향기가 좋다."
"아이참 할아버지는, 꽃이 정말 싫어해요. 그냥 이렇게 해야 해요."
손녀는 막 올라온 연 봉오리 같은 두 손을 내밀더니 제 앞쪽 허공을 살살 쓸어 자기 코 쪽으로 가져가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아이쿠, 착하고 예쁜 공주님이구나. 이름이 뭐지?"
그 때 어떤 중년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땡볕에 모자도 쓰지 않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바짓가랑이와 신에 잔뜩 흙을 묻힌 채 손에 든 가위로 연 가지를 뚝뚝 잘라냈다.

"아이 아저씨, 꽃이 아파요. 꽃을 꺾으면 어떻게 해요. 불쌍해요."
손녀는 마치 자신이 아픈 듯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래 미안하다. 그런대 꽃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없이 잘라주는 거야. 다쳐서 고쳐주는 거야. 이렇게 수술해주어야 꽃이 살거든."

손녀는 이해가 잘 안되는지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 사람은 바로 그 정원을 일궈낸 사람이었다. 그는 연신 상처 난 꽃잎을 따내기도 하고 잡풀을 뽑기도 하면서 연꽃사랑에 대한 넋두리를 풀었다.

“사람들이 꽃을 찾아볼 때는 유원지라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보세요. 꽃 사진을 찍는다고 봉오리 꽃잎을 함부로 벗겨 내기도 하고, 줄기의 방향도 이리 저리 돌리기도 하고, 그리고 몰래 꺾기도 하지요. 참 애만도 못한 한심한 어른이 많아요. 대부분 아이들이 더 꽃을 사랑해요. 꽃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그래요. 모든 어른들이 이렇게 손녀처럼 참으로 꽃을 사랑하면 꽃들이 더 아름답게 필 것을 애만도 못한 어른들이 다 망쳐놔요.”

그렇다. 아까 열매에 손을 대고, 꽃잎을 만지려 하고, 향기를 더 맡겠다고 코를 그 가까이 들이댄 것도 결국 나만 가져보겠다는 나도 모르던 내 욕심이었다. 그동안 꽉 채운 내 안의 욕심들을 조금씩 비워내고, 이제 남은 삶을 내 손녀딸의 그 순수한 마음처럼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을. 문득 어디에선가 무심히 읽었던 짧은 구절이 생각났다. ‘자연은 그를 지켜 주는 만큼 우리 사람을 지켜 준다’는 진리를. 조그만 일에도 배운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내 손녀를 보면서, 이제 애만도 못했던 욕심의 허물을 벗고 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살아내어야 행복하리라는 것을 새삼 일깨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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