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혜진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
텔레비전을 애인삼아도 좋을 이유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요즘 교육방송을 보면 정말 애인감으로 탁월하다고 할만하다. 얼마 전 교육방송은 ‘초등생활보고서’를 연속기획물로 다큐프라임 시간에 방영하였는데, 이 기획물은 차별, 칭찬, 그리고 나눔을 주제로 총3편으로 구성되었다. 이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방영작은 차별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정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키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뉘고, 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차별을 경험하는 초등학생들의 감정 변화와 깨달음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사실 이 실험은 한 아이의 외로움의 원인을 찾고 치유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 교실에는 거의 일 년 동안 일명 “왕따”를 당해오던 한 아이가 있었는데, 개별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이 아이의 외로움의 원인은 사실 실체가 없었다. 또래에 비해 다소 덩치가 컸지만, 마음은 더 어렸던 이 아이를 같은 반 학생들은 ‘덩치가 크고 둔해서 게으를 것’이라든가, ‘말투가 어눌해서 공부를 못할 것’ ‘잘 씻지 않아 더러울 것’이란 선입견과 편견으로만 대했고,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관념이 돼 버렸던 것이다.
사회적 차별의 문제가 작은 교실 안에서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지 보여준 또 하나의 유명한 실험은 오래 전인 1968년에 미국 아이오와 주의 한 백인 거주 지역 초등학교에서도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제인 엘리엇은 마틴 루터 킹의 암살을 계기로 학생들에게 인종에 대한 편견이 조직화되고 지속되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고, ‘교실나누기-갈색, 푸른색 눈동자 그룹’실험을 감행했다. 푸른색 혹은 갈색 눈동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차별을 경험한 백인 아이들은, 그 작은 교실사회에서 제도화된 차별적 관행 때문에 자신의 감정 상태가 변화하고 심지어 학습능력마저 저하됐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조직화된 편견에 따른 차별로 고통 받는 개인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위 실험들은 편견을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시각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에 대한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판단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지속성을 지니며, 그 판단으로 인해 이익을 취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판단이 행동으로 구현될 때, 그 행동들이 집합을 이루어 습관이 될 때, 이미 개인적 판단은 사회적인 것이 되고, 또 다른 개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제도로 굳어진다.
키나 덩치가 크다는 것, 파란 눈이나 갈색 눈을 가졌다는 것이 두 교실 사회 안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 어른 사회 안에서도 신체나, 성별, 국적, 학력, 지역, 계층의 차이 등은 늘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켜 왔다. 때론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차별적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실수라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는 큰 고통이다. 실험 후 아이들은 평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누군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다시 곱씹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친구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내가 혹시 그 누구를 외롭게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겠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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