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한수 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연구원 |
현상적으로만 보면 유가 걱정은 일단 한시름 놓을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어떤 전문가는 ‘이제 유가는 하락하는 일만 남았고,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가가 문제`라는 호언장담 아닌 호언장담도 내놓고 있다. 물론 지난해 이맘 때 70달러 대(WTI 기준)의 유가를 생각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요즘처럼 유가로 인하여 국가경제가 휘청거리고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시기를 접할 때마다, 이제는 전설 속의 옛 얘기처럼 회자되고 있는 석유파동을 떠올린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기술력이나 정보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유가 앙등의 충격파는 지금보다 훨씬 컸으며 이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의 반증으로 최근 유가 급등의 원흉 중 하나인 달러 약세에 따른 투기세력을 규제할 수 있는 법률이 8월 초 미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로 인해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서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유가가 불안수준으로 급등한지 2개월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조치다. 만일, 과거 석유파동 시절에 똑같은 원인이 문제가 되었다면 투기세력이 배를 불릴 만큼 불린 후에야 유가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국제석유 시장의 구조와 대처방법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당시에 발 빠르지 못할 수밖에 없는 대처능력은 오히려 인류로 하여금 근본적인 대안을 강구하도록 만들었고, 그로 인해 당시의 에너지에 대한 사회과학적 고민과 에너지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가히 극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석유파동으로 인해 다양한 에너지기술들에 대한 투자가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최근에서야 국제적인 거대사업으로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는 핵융합도 지금부터 30여 년 전인 당시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기술력과 정보력으로 무장하였다고 자부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너지기술은 언제나 고유가 시대에는 필수 생존 기술로 각광받지만, 유가가 안정적인 수준에만 다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홀대를 받기 일쑤다. 오죽하면 에너지 관련 연구개발을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가가 200달러쯤 가야지 제대로 된 에너지기술 연구개발(R&D)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특히, 핵융합과 같이 중장기 대규모 자원이 투입되는 기술은 평소에도 단기적 에너지기술보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기가 십상이다.
이제는 석유파동 당시처럼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사후약방문식의 에너지문제 대처로는 에너지 걱정 없는 미래는 요원하다.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요구하는데 생산 빈도와 양에서 한계가 있는 신재생에너지만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 관련 원천기술을 전수한 CE(Combustion Engineering)를 합병하였던 웨스팅하우스조차 작년 10월 도시바에 인수되어 그 관련 기술 수출이 더욱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대중 수용성 확보에 있어서 늘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도 원자력의 르네상스 시대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정책결정자를 비롯한 시민사회, 연구자들은 이 모든 정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냉철히 고민하여야 할 때이다.
근자에 국격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인격이 사람의 품격을 의미하듯 국가의 품격을 국격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새정부는 과학기술예산을 GDP의 5%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물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과오를 범하여서는 안 되겠지만, 예산 투자 비율에 걸맞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격을 갖추려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더라도 그 잠재성이 무한한 핵융합 에너지와 같은 성격의 연구개발 투자를 놓고 주저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고수익에는 언제나 고위험이 수반되기 마련이며, 국가가 개입된 공공부문이더라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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