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장 |
유도 결승전에서 최 선수와 맞붙어 패해 은메달에 머문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 그리고 박태환 선수에 밀려 동메달에 머문 미국의 젠슨 선수. 이 두 선수의 모습은 패자가 아니라 승자의 그것이었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높이 치켜들고 관중의 환호에 답하는 자랑스러운 모습. 운동 경기는 상대선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그 반면 예선에서는 박태환 선수를 누르고 조 1위로 들어왔으나 정작 결선에서는 박태환 선수에 이어 은메달에 머문 중국 선수의 표정과 행동은 분명 패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을 넘어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 동양권 선수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서는데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올림픽 참가에 의미를 두었던 시대는 먼 옛날이지만 메달 숫자나 메달 색깔에 모든 의미와 가치를 두는 분위기는 지양되어야 한다. 공산권이 몰락하기 전에 올림픽의 강자는 옛 소련, 동독, 불가리아, 쿠바 등이었다. 그들이 휩쓸어간 수많은 메달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올림픽 현장인 베이징에는 가지 못하지만 집에서 선풍기 켜놓고 시원한 수박을 먹어가며 편하게 한국 선수들 활약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어딘가. 그것도 선수들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불 수 있는 HD영상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서울에서 열렸던 88올림픽이 생각난다.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에 필자는 불행하게도 한국에 있지 못했다. 당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같은 대학교 한국 유학생들을 집에 불러 함께 중계방송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문제는 TV중계는 하루종일 하건만 한국선수가 경기하는 광경은 거의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미국 TV중계는 미국 선수들의 활약상 위주로 중계 되었고 이런 미국 위주의 국수주의적 편향 보도는 언론과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올림픽 개막 며칠이 지난 후부터는 상황이 조금 개선되기 시작했다.
올림픽은 지구 전체의 축제다. 개막식 이후 우리나라 TV방송국들의 중계를 보면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선수가 뛰든지 뛰지 않든지, 잘하든지 못하든지, 지구촌 축제의 모든 것을 시청자가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체육도 문화의 일부이고, 따라서 다양한 경기를 간접적으로나마 TV중계로 즐기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향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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