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종’이라는 이름이 화면 위에 뜨면서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품바 최석종입니다.”
굳이 일부러 내세울 만한 ‘명함’은 아닌데 그는 항상 이름 앞에 ‘품바’라는 말을 붙인다.
그 이유를 물어봤다. “품바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1987년 품바가 좋아서, 타령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거지’길에 들어선 것이 지금까지 품바로 떠돌게 된 연유다.
대부분 사람들은 품바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동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동냥 짓이나 하는 것이 아닌, 일을 해주고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 공짜로 얻어먹는 비렁뱅이가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해주고 품삯을 받는 ‘당당한 직업’이라고 강조한다.
▲품바 최석종씨 |
품바도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다니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알고, 흐느적거리는 춤사위 속에서도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단지 남루한 행색과 모자란 듯한 겉모습만으로 천박하게 치부할 뿐, 감춰진 초상(肖像)을 살피지 못한다.
그는 품바의 감춰진 내면을 볼 수 있었단다. 그래서 어린 시절, 다른 이들보다 품바가 가장 순수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1960~1970년대 최씨와 같은 거지들의 삶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기와집에 살며 이밥을 먹는 사람, 토담집에서 양푼에 보리밥을 비벼먹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지만 서로 정을 나눌 줄 알던 시대다.
지금처럼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각박하고 단절된 세상은 아니었단다. 연일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냉혹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볼 때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해도 이웃들과 함께 정을 나누는 그 때가 그리워진다.
최씨는 세월이 흘렀지만 동시대를 살며 소통하고 교감하던 ‘양반님’들의 마음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공연을 보고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삭막한 세상에 정을 다시 싹틔우고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피우는 동기가 됐음 하는 바람이다.
최씨는 척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힘없고 가련한 이웃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길 소원한다.
그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깡통을 들곤 품바공연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이다.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차피 당신은 ‘잡놈’”이라고. 기분 나쁠 법도 한 데 아무렇지도 않단다.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 귀천이 없는 동격(同格)이란 생각에서다.
잡놈이면 어떻고 정승이면 어떠리. 벗은 몸으로 태어나 삼베옷 입고 떠나는 건 마찬가지인 것을.
품바 앞에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 물질로도 지위로도 나누질 못한다. 품바 공연을 하다 보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가진 자와 없는 자, 권세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는 새로운 ‘반상(班常)의 법도(法道)’로 생겨난 폐단에 던지는 저항의 메시지가 아닐 듯싶다. 품바 분장을 하지 않는 평소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 웃고 즐기지만, 품바 분장을 했을 땐 상대방이 선입견을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겉치레로 사람을 구분하는 습성을 지닌 세상 앞에 그도 어쩔 수 없는 대목이다. 스스로 안타깝지만.
그래도 서운한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평소 차림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먹하기도 하지만 품바 분장으로 그 사람을 다시 만날 때는 오히려 신기하기도 하고 편해서 그런 지 더욱 친근하게 다가서게 된단다. 세상사람 모두 품바처럼 살았음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럼 다툼도, 시기도, 반목도, 갈등도 없을 거란 믿음에서다.
품바 공연을 볼 때면 낯선 사람들도 금세 친구가 되고, 더불어 웃고 울며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듯 그런 세상을 소망한다. 그런 그도 속상할 때가 있단다. 일부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상업적으로 변질돼 가는 품바 때문이다.
품바의 정통을 지켜온 자신마저도 그런 거짓 품바 부류 속에 매몰된 현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허나 오늘도 그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깡통을 두드리며 한바탕 신나는 춤판을 벌인다.
자신을 찾는, 자신을 사랑하는 많은 ‘양반님’들이 있기에.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곤 활짝 웃는다. 아픔과 소망은 분칠 속에 감춰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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