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육식 서울과 초식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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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육식 서울과 초식 지방

  • 승인 2008-08-06 00:00
  • 신문게재 2008-08-07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 그곳 쿵족(族)은 하루의 40%를 사냥하거나 사냥 얘기로 소일한다. 하루 70% 이상을 언어중독증에 갇혀 사는 나 같은 사람의 관심을 붙드는 것은 그들이 쓰는 ‘고기 고프다’라는 표현이었다. 술 고프다, 고기 고프다… 많이 듣던 가락 아닌가? 핥핥핥(돼지가 바닥에 떨어진 얼음이 아까워 핥는 소리).


채식주의자의 배가 표류하다 섬으로 휩쓸려 운 없게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풀만 먹는 1차 소비자를 먹은 식인종은 2차 소비자다. 그가 육식주의자이면 식인종은 3차 소비자가 된다. 먹이사슬로 도식화해서 하는 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육식동물(서울)-초식동물(지방)론은 체질의 다름을 인정한 역할 분담 차원이었어도 상당히 비위가 뒤틀린다. 오 시장은 “하드웨어 중심인 육식동물과 소프트웨어 중심인 초식동물은 경쟁할 필요 없다”고 했다. 지방은 토끼처럼 온순히 풀만 뜯으라는 건지 잡아먹히라는 건지, 주장 한번 사납고 괴상하다.

어느 생물이든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생존하려면 지방도 동동거리야 하고 나름 방어도 해야 한다. 문만 열면 푸른 초장이 펼쳐진 것도 아닌 한국적 환경에서 서울 중심 성장 전략은 지방 고사 전략이다. 서울만 따로 밥상을 차리자며, 지방은 생태계에서 경쟁할 파트너로서의 가치마저 부인당하고 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포획하면 먼저 내장을 먹어치운다. 초식동물 위장에서 막 소화되는 식물부터 섭취함으로써 식물성을 보충한다. 서울이 클수록 지방이 죽는, 미각의 현저한 차이, 따지고 들면 수도권 규제를 풀자는 요구는 초식동물의 내장까지 꺼내 먹겠다는 육식 공룡의 탐욕에서 비롯됐다.

그 말을 오 시장은 에둘러 말했다. 서울이 기러기 편대의 대장 기러기가 되어 날다 서울 경제효과가 차고 넘쳐 확산효과(Spill over effect)를 내면 너희 지방도 받아먹어라. 그러나 맏형 서울이 갖출 미덕은 그런 것이 아니다. 5+2 경제권이든 뭘 하든 지방도 독수리 5형제처럼 힘차게 날 자유가 있다.

다만 들판에 풀이 지천인데 왜 우리만 잡아먹느냐는 피해의식으로만 말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의 식성을 타박하기 전에 지방 스스로 기민한 판단력과 발톱으로 무장한 육식동물이어야 할 이유다. 육식이 초식 사정 들어줄 까닭이 없다.

지방이 초식이라는 상황 인식은 대전시와 충남도와의 당정협의회에서도 여실한 듯 보였다. 이완구 충남지사의 언급 그대로다. “(한나라)당 지도부 보니까 대전과 충남 인사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지사의 ‘충청권 홀대론’에 맞선 박순자 최고위원의 ‘이명박 정부 홀대론’은 가관이다. 중앙 홀대론이라도 들이댈 기세다.

이러한 ‘지방=초식동물’틀 지움은 서울이 지방을 먹는 2차 소비자로 안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거친 사바나 초원에서 지방도 사냥과 육식에 능란해야 할, 그런 시대다. 식사의 기본은 신선함. 풀만 뜯던 지방이지만 지금 무지무지 ‘고기 고프다.’/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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