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훈 배재대 총장 |
필자는 외국 유학생 유치와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중국을 70여회 방문한 바 있다. 수없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늘 무엇을 얻어올까만 생각하다가 언제부터인지 중국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초 우리 대학이 설립한 중국내 한국어교육센터 실무자를 위한 세미나를 주관하기 위해 하북대학을 방문했다. 공식행사를 마치고 중국 측 관계자에게 제일 가난한 지역이 어디인가를 물어 하북성 보정시에서 150여km 떨어진 부평현이라는 산간지방의 현청소재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부평현 교육국 부국장의 안내를 받아 현청소재지 내의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찾았다. 두 학교 모두 환경과 시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다. 학교 관계자는 비가 오면 건물이 무너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모두 하교시킨다고 설명했다. 교실 바닥은 먼지가 풀풀 날렸으며, 칠판은 시멘트에다 검은 페인트를 칠해서 쓰고 있었다. 그래도 이들 학교는 현(우리의 면소재지)에 위치해 있어 사정이 좀 낫다는 것이다.
이튿날 내친김에 중국정부가 지정한 최빈곤 지역인 하북성 장가구시 상의현 칠갑향에 있는 초등학교와 분교를 찾아가 보았다. 이곳은 북경에서 내몽고 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곳으로 주로 농업과 목축업을 하는 전형적인 농촌지방이다. 중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모두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침대는 볏집에다 천을 둘러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헤져서 이 곳 저 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중국 화장실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화장실 상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하루 식사비가 2원(한화 300원) 정도라고 하니까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갔다. 교실 유리창은 이 곳 저 곳이 깨져있고 옷도 남루하여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나는지 정말 걱정스러웠다.
이처럼 열악한 시설이 이번 쓰촨성 대지진 때 학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원인인 것 같아 매우 슬펐다.
북경으로 돌아와 호텔에서 머물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50년 전 초등학교 다닐 때 미국에서 보내준 분유를 먹고 추운 겨울에 무명 홑바지만 입고 오돌 오돌 떨면서 양지쪽에 앉아서 놀던 생각이 났다.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던 기억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 시절 교육계에 대한 존경과 긍지는 매우 높았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존경 받는 분은 면장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곳은 우리 초등학교였다. 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온 동네가 긴장과 송구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도 났다.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을 온 국민이 느끼던 시절이었다.
교육의 힘으로 선진국 문턱에 오른 우리나라도 이제 다른 나라를 도울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도움을 주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방법은 교육지원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도움이 그 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폐를 끼치거나 대가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흔히들 좋은 일을 하려고 시작했던 일들이 지속되지 못하거나 남에게 오히려 해를 주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일은 겸손하고 조용하며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세계의 어린이들이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어린이 교육지원에 나서는 단체는 많다. 우리들이 어떤 단체라도 가입하여 십시일반으로 도움에 나선다면, 진정한 선진국민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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