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태준 연극연출가/배재대학교 공연영상학부 교수 |
“자네가 연기한 그 대사는 어느 작품에 나오는 건가?” “네, 고(故) 차범석 선생님의 ‘산불`이라는 작품입니다.” 목소리도 또랑또랑, 이 얼마나 딱 부러지는 대답인가. 당연히 작품의 배경쯤은 알고 있겠지. “‘산불`의 시대 배경은?” 그런데 웬걸... 영특해 보이는 이 학생이 머뭇거리는 게 아닌가. “그게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끼리 싸운 전쟁인데요, 어쩌구 저쩌구...” 이쯤 되자 그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심사위원들도 일제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수습은 해야지. “아하, 6.25라는 말을 까먹은 모양이로구나?” “아, 예, 6.25... ” “그럼 혹시 6.25 전쟁이 몇 년 동안 벌어졌는지 아니?” “......” 우리의 기대는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6.25가 남침이니, 북침이니?”
“......” 이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남은 심사 일정 내내 수험생들에게 역사 상식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는 몇 년 동안 우리 한반도를 강점했는가?” “3.1 운동이 일어난 해는?”
90년대 이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한테는 이런 일화가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역사를 모른다. 아니 배우지 않았거나, 배움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정권마다 교육개혁을 부르짖으며 갖은 생색을 내고, 이미 사교육이 공교육 뺨치는 세상이 왔건만 전인교육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최근에 또 다시 독도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문제가 될 사안이 아닌데, 번번이 저들의 도발에 의해 문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데 일면 저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방식 자체를 보면 사안이 심상치가 않다. 저들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두고 전략적으로, 그야말로 ‘정색(正色)`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를 기정사실화하고 그것을 자손만대 가르치고 배우게 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쯤에서 일제 36년을 잊은 우리 아이들과 독도를 자신의 고유 영토로 확신하는 저들의 후세를 오버랩 시키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동안 저들이 독도문제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정색할 때마다 ‘생색내기`로 대응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린 그 대응의 일반적인 수순도 알고 있다. 일단은 거국적 분노와 규탄, 때맞추어 새로 공개되는 역사적인 문건, 독도 인근해역에서의 전시적인 군사작전, 관행적인 자아비판과 신중론, 그리고 다시 망각. 망각. 저들이 다시 깨울 때까지.
지난 학기 학생들과의 한 술자리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얘들아, 비록 ‘토지`는 안 읽었다 하더라도 박경리라는 작가가 너희들과 동시대인이었음은 잊지 마라. 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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