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모니터로 관찰해보면 옷과 무관하게 여자는 남자의 상체 쪽에, 남자는 여자의 신체 중간 부분에 눈길을 많이 준다. 보이는 정보와 추구하는 정보에 등식이 성립하면 접근이 이뤄지는데, 결국은 ‘암컷’ 선택으로 세상이 굴러간다. 대다수 ‘수컷’은 ‘암컷’ 사인이 없으면 접근이 차단되는 현실에 깊이깊이 유념해야 한다.
사내다움도 철부지 마초이즘(남성우월주의)이 아니라 오래된 관념의 축적인 것이다. 홍준표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내각을 싸잡아 “사내답게 당당하게 책임지는 자세가 없다”고 일침 가했을 때의 ‘사내답다’는 뭔가. 화장실에서 오줌발 올리고 한 손 열중쉬어 자세로 ‘푸셥’하는 것? 여기서의 사내는 사내다운 사내를 말함이다.
뜯어볼수록 많이 다르다. 휴대폰 회사는 남자 셋보다 여자 손님 한 명 확장이 도움될 수 있다. 남자는 고통을, 여자는 피로를 잘 견딘다. 열탕에 참새 발을 담가도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수컷 참새가 오래 참는다. 남자는 마음속에 말을, 여자는 말속에 마음을 담는다. 애인이 헤어지자면 남자는 설득하나(64.6%) 여자는 내버려둔다(65.8%).
이 대목에서 남자다움, 사내다움 정의가 잠깐 흔들린다. 정의가 어떻든 제 한 몸 보신 말고 장관과 수석들이 ‘사내답게’ 책임지라고 일갈하는 여당 원내대표, 문책론보다 급한 게 있다며 외교라인 문책에서 발 빼는 듯한 대통령. 깨끗한 퇴진이 사내다운지 심기일전, 전열을 가다듬는 쪽이 사내다운지, 문제는 문제다.
공자 이전의 ‘인(仁)’을 ‘어질다’가 아닌 ‘남자답다’로 새기는 이도 있다. 그렇게 보면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가 상황에 어울리겠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하지만 뭐니 해도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답다는 것이 규정하기도 실천도 제일 어렵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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