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기사를 접한 서울의 한 사업가 김모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1966년 제작된 최초 동상의 현판과 사적비, 동상기 등 3점을 부여군에 돌려보내게 된 것.
버려진 동상만큼이나 현판들의 사연도 기구하다.
22년 전 김 모 회장은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서 이 현판들을 우연하게 발견했다. 버려진 동상에서 떨어진 현판들은 누군가에 의해 골동품 가게로 팔렸고, 김 회장이 이를 발견하고 86년 당시 550만원에 구입하게 된 것.
전북이 고향이었던 김 회장은 평소 존경했던 계백장군 동상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계백장군 본래 동상이 박정희 정권 시절 교체됐다는 중도일보 보도를 접한 뒤 ‘주인을 찾아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본사에 연락했고, 윤준홍 부여문화원장이 사비(私費)로 현판을 구입, 이들 현판들을 부여로 옮겨왔다.
이번에 고향을 찾아온 현판들은 현재 동상 이전에 세워져 있던 계백장군 동상에 붙어있던 것들로 국내 3대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던 원곡 김기승 선생의 작품이며, 글은 월탄 박종화 선생이 썼다. 조각은 동상을 만든 윤석창 선생이 맡았다.
‘계백장군 상’현판과 김종필 전 총리가 1966년 동상에 써놓은 계백의 업적을 추모하는 글인 ‘동상기’, 백제가 멸망하기까지 계백장군의 발자취를 적은 ‘계백장군의 사적’등으로 이뤄져 있다.
제작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비교적 보관 상태가 양호하고, 동판으로 무게만 110㎏에 육박한다.
부여문화원은 윤준홍 원장은 “서울에 가서 처음 현판을 접했을 때 부여군에서 반드시 찾아와야 할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임을 판단하고 사비 550만원을 털어 양도를 받아오게 됐다”며 “돈의 가치를 떠나 동상이 훼손되지 않고 양호하게 보관돼 있다가 고향인 부여로 돌아와서 매우 기쁘다. 이전 동상도 찾아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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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가 쓴 계백장군 동상기(記)]
아름다운 땅은 거룩한 사람으로 인하여 더 한층 향기롭다. 이곳 부여는 백제의 옛 서울 사비성이요, 계백장군은 백제의 역사를 최후로 빛낸 큰 충신이다.
나당연합군 십팔만 명이 물밀듯 백제로 쳐들어왔을 때 장군은 겨우 오천 군사로 황산벌에 대결했다. 처음 네 차례나 적을 물리쳤으나 오천의 적은 군사로 십팔만 대병을 끝까지 당해낼 수 없었다.
슬프다. 살은 다 하고 칼은 부러져 장군은 마지막 붉은 피를 장엄하게 황산벌에 뿌렸다. 일월과 함께 천고에 빛나는 장군의 충혼을 젊은이들과 함께 추모하면서 역사깊은 이 땅에 삼가 동상을 세운다.
-1966년7월31일-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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