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권 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
박용래는 누구인가?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대전-충남을 문향이 넘쳐나는 도시로 가꾼 인물이다. 시인 지망생들은 그의 시를 통과제의처럼 반드시 체험해야 시인이 된다고 할 정도로, 그는 한 시절 대전-충남 문단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그것은 ‘박용래 현상`이라고 이름 붙일 만했다.
향토적 리리시즘을 간명한 언어 감각으로 형상화하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그는, 누구보다 대전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했던 시인이었다. 세상과 사물에 대한 풍부한 감성의 촉수를 지녔던 그는 또한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감동의 눈물이고 진실의 눈물이었다. 그의 생전에는 경향각지의 시인묵객들이 그 눈물을 만나기 위해 오류동 149-12번지를 찾아들곤 했었다.
그런데 행정 기관이 앞장서서 그의 생가를 헐어버리고 그곳에 공용주차장을 짓겠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문화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주차장을 짓기 위해 예술가의 생가를 헐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예술가의 생가를 지키기 위해 도로를 우회하거나 건물의 신축을 포기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어보았다. 시인의 생가터는 단순한 집터가 아니고 그의 시심과 예술혼이 잉태되고 자라나고 꽃 피운 신성한 장소이다. 예술의 산실을 지켜 후세에 온전히 전하는 것은 어떠한 개발의 논리나 경제적 이득보다도 앞서는 정신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대전-충남의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 문학과 관련한 인프라만 보아도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서울-경기 지역에는 문학의 집, 영인 문학관, 조병화 문학관, 한국현대 문학관, 한무숙 문학관 등이 있고, 강원도에는 김유정 문학촌, 이효석 문학관, 만해 마을 등이 있다. 경상도에는 경남 문학관, 구상 문학관, 마산 문학관, 이육사 문학관, 청마 문학관 등이 있고, 전라도에는 미당시 문학관, 아리랑 문학관, 채만식 문학관, 최명희 문학관 등이 있다. 그런데 충청도에는 정지용 문학관, 원서문학 등이 있으나 모두 충청북도에 자리 잡고 있다.
대전-충남 지역에는 제대로 된 문학관 하나가 없는 셈이다. 충남 예산에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이 있으나 그 명칭에서 보듯이 본격적인 문학관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대전-충남의 행정가들은 문화 도시니 문화 지역이니 하여 공염불만 외칠 것이 아니라 대전-충남에서 배출한 걸출한 근대 문인들의 생가터를 보전하고 그들의 정신을 후세 전할 수 있는 문학관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왜 우리 지역에는 박용래, 신동엽, 이문구 등을 기리는 문학관이 없는지 곰곰이 되새겨볼 일이다. 이들의 문학적 업적은 다른 지역의 문학관에 이름을 내건 어떤 문인들보다도 뒤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이라도 행정 당국에서는 박용래 시인의 생가터에 공용주차장을 짓는 일을 재고해 주기 바란다. 구청장이 아니면 시장이라도 나서기 바란다. 예술의 산실을 헐어버린 곳에 시멘트를 뒤집어씌워 자동차 매연과 소음만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버리는 일은 막아야 한다. 문향이 피어올라야 할 시인의 생가터에 공용 주차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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