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 대전괴정고등학교 교사 |
인성교육 평생교육 방과후학교 등 뭐 그리 세련된 교육용어도 없었다.
학교 가면 아이들과 만나고 조회하고 수업하고 청소하고 종례하고 그저 시간 가는대로 살았던 모습인데, 돌이켜보면 늘 그 시절이 행복하다.
선생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해본 적도 없다. 그저 짬이 나는 대로 아이들과 얘기하고 그러다 보면 친해지고 집에도 데려오고 또 물한리(충북 영동) 저 골짝에 사는 어떤 녀석은 노래 연습하다 집에 와 잠도 재우고…….
겨우내 얼었던 세상이 녹고 싸리꽃 피면, 아이들은 한 아름씩 하얀 싸리꽃을 들고 어떤 녀석은 끌어안고 교문으로 향한다. 교정 밖으로 눈만 돌리면 쉬 볼 수 있는 지천한 꽃들이다. 꽃병 대신 큰 청소용 양동이에 물을 붓고 꽃으로 가득 채우면 금방 교실이 환해진다. 선생님 탁자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술병 비슷한 꽃병에 꽃을 담아 정성을 다한다. 그뿐인가 교무실도 온통 하얗게 물들었다. 진달래 피면 학교는 온통 붉게 물든다. 철쭉꽃 피면 철쭉으로 늘 아이들은 선생님을 생각했다. 아니 아이들은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이 산골에서 돈을 구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을 터……. 학교에 1000원짜리 한 장 가져오기는 매우 어렵다. 산촌이라 쌀농사는 그리 성하지가 않다. 산속에 들어가 좋은 버섯이나 약초를 따고 그것을 또 수십 리 떨어진 황간장이나 영동장에 나가야 중간 상인들로부터 몇 푼이나마 돈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청소하고 마루바닥 광내자면 부엌에 놓인 참기름 한 병 들고 오는 데에는 아무도 인색하지가 않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금방 교실은 옆반 아이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아이들의 사랑처럼 번진다. 아이들은 계산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바보였던 것일까?
내 유독 30년 다 돼가는 교단생활 중에 이 아이들이 더욱 그리운 것은 그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산할 줄도 모르는 멍청한 사랑, 멍청해도 아름다운 사랑, 아무리 느껴도 싫증나지 않을 그런 사랑이 난 요즘 훨씬 더 그립다.
학교폭력, 청소년 비행, 선생님과 제자는 어디가고 교사와 학생만 남았냐고 개탄하는 현실이다. 감이 익으면 가장 좋은 것 선생님에게 따오고, 밤 익으면 가장 굵고 실한 것 선생님 책상에 살짝 내밀고 달아나는 아이들이라면 뭐 그리 걱정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어느 때인들 그렇지 않았겠냐만 어쨌든 지금은 ‘입시와 사투하는 전쟁터가 곧 학교다`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비중이 어디로 치우쳐있는가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저출산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이미 다 왕자요 공주로 굳은 자리매김을 하였고, 교단은 심심치 않게 아이들과 인격 운운하는 견해차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책과 씨름을 하건 아님 다른 어떤 것으로 씨름을 하건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자. 그리고 더 사랑하자. 그리고 훗날 오늘이 그리워지면 이 또한 내 삶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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