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호 한밭대 인문과학대학장 |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은 외국인들의 눈을 통해 보면 더욱 극명해 진다. 한국에 거주했던 외국인들의 실제 증언을 들어 보면, 어떤 첨예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폭풍 전야의 분위기에서도 여전히 활발하게 유지되고 발전하는 한국 사회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한다고 한다. 1990년대 말 IMF 관리의 경제 위기에서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금모으기 운동이나,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서울 시청 광장을 붉은 물결로 뒤덮었던 응원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이러한 우리나라를 쏠림 현상이 강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규정했을까?
어느 한 해도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때가 없건만, 올 해 만큼 대한민국을 둘러 싼 국제 정세가 이처럼 예각화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진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거니와 아직까지도 해법을 모색하는 데 진통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벌어진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북한의 총격과 피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도발 등 연이은 악재들이 대한민국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가장 앞머리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생존권’과 ‘국토의 영유권’은 국가의 존재 유무에 관련한 국기(國基)에 해당한다. 이를 총체적으로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은 응당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방법론이 문제다. 앞서 언급한 감성적 대응 전략으로는 합당치 않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은 여전히 감성적이다. 각종 보도 자료에 나타난 기사들을 보자. ‘대통령 격노’, ‘긴급 대책반 편성’에서부터 ‘국민들의 분노’ 등등. 일방적이고 감성적인 성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어떤 열혈 국민이 단지(斷指)나 분신(焚身)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다면 국민들의 정서는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결단코 그 뿐이다. 정부의 분노에 찬 반응은 위기대응 시스템의 부재를 자인하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국민들의 자극적 구호나 비분강개 역시 현실적으로 아무런 대안이 되지 못한다. 주변 국가들의 발호와 도발에 대처하는 방법이 이렇듯 냄비처럼 감성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자국의 이익이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를 내는 미국이나, 허허실실 치고 빠지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 같은 민족이면서도 국민을 담보로 배짱을 부리고 으름장을 놓는 북한은 분명 우리에게 고단한 상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한 우리의 경제와 안보, 통일을 위해서 버릴 수도 없는 중요한 외교 파트너이기도 하다. 비감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초유의 힘을 발휘하여 극복해 온 우리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오늘의 국난 역시 잘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질경이처럼 유지해 온 우리 한민족의 끈질긴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위기를 맞이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한민족은 그래서 더욱 위대하다. 다만 어려움을 극복하는 우리의 자세와 방법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보자는 것이다. 좀더 냉정하게 분석하고, 예리하게 통찰하며, 의연하게 대처하는 국민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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