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현웅 변호사 |
잔디밭 끝에 이르러 어떻게 기계를 돌려 세우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 잔이 뭔가 물으려고 그를 소리쳐 불렀다. 데이빗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이에 어린 켈리는 잔디 깎는 기계를 몰고 잔디밭 옆에 있는 화단으로 곧장 질주해 버렸다. 그 결과 화단에는 50㎝ 폭으로 시원하게 길이 나 버렸다.
고개를 돌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본 데이빗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화단을 가꾸었으며 이웃의 시샘을 한 몸에 받아온 터였다. 그가 아들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려는 순간 재빨리 잔이 달려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보, 잊지 말아요. 우린 꽃을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
잔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들에게 가장 우선적인 사항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깨달았다. 아이들의 자존심은 그들이 부수거나 망가뜨린 그 어떤 물건보다도 중요하다. 야구공에 박살난 유리창, 부주의해서 쓰러뜨린 램프, 부엌 바닥에 떨어진 접시 등은 이미 깨어졌다. 꽃들도 이미 죽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다 아이들의 정신까지 파괴하고 그들의 생동감마저 죽여서야 되겠는가?
종종 아이가 실수를 저지르고 필자를 살피는 모습을 직면할 때 마다 사실 위 글이 떠올라 다행히 감정이 앞서기 보다는 이성을 되찾고 나름 차분하게 상황을 수습하려 하지만, 작은 실수가 아닌 경우에는 자제력을 잃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자제력을 잃고 가장 후회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의 눈망울이다.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어른이 어떻게 반응할까 살피는 아이의 눈망울에서 아이에게 필자는 ‘혼나지 않으려 살피는 존재’가 되어 있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음에도 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면서 다정한 아버지보다는 엄격한 아버지였고, 그래서 작은 실수에도 화를 내셨으며 화를 내는 강도는 그때그때의 아버지의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필자는 거의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는 눈치 9단이 되어 있곤 하였다. ‘애어른’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성장기를 거치며 달갑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필자가 아이들에게 ‘위로받는 존재’가 아닌 ‘살피는 존재’가 되어 있으니 ‘청출어람’은 무색하고 ‘부전자전’만 남아 있는 꼴이다.
화를 낸 이후 아이를 꼭 안아주며 ‘네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빠의 상태가 이래서 그랬으니 미안하다’고 말하리라, 화를 내기 전에 자제력을 발동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종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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