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재 국악칼럼니스트 |
한편, 신라의 문호 고운(孤雲) 최치원은 자신의 은거지 가야산을 두고, “바위 틈 치솟는 물 온 산을 뒤흔드니/ 곁에서 하는 말도 분간하기 어렵네/ 세상의 시비경쟁 들릴까 두려워/ 짐짓 물을 시켜 산을 꼭꼭 숨겼구나(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라고 그렸습니다. 세속의 욕심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 깊은 곳을 계곡의 물소리가 다시 한 번 둘러쌌습니다.
이러한 곳에는 오직 적막(寂寞)과 정지(靜止)만이 존재할까요? 시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곳을 오류선생 도연명은 “구름이 무심히 산굴에서 피어나는(雲無心以出峀)” 곳이라고 읊었으며, 망천(輞川)의 별서(別墅)에 살던 왕유(王維)는 “밝은 달이 찾아와 화답하는(明月來相照)” 곳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곳은 가사문학의 대가 정철이 “우수수 나뭇잎 지는 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한(蕭蕭落木聲 錯認爲疎雨)” 곳이며,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가 “석양빛 강물에 드니 바위벽이 번쩍이네(返照入江飜石壁)”라는 절묘한 구절을 얻은 곳이고, 이른 새벽 은일사의 거처를 몰래 나서던 박순(朴淳)이 “지팡이로 돌길을 건드려 새들을 깨운(石逕供 音宿鳥知)” 곳이며, 출중한 용모를 지녔던 낭만시인 두목(杜牧)이 가던 길 멈추고 “2월의 꽃보다 더 붉은 서리 머금은 단풍(霜葉紅於二月花)”을 감상한 곳이고, 청련거사적선인(靑蓮居士謫仙人) 이백이 “하늘로 날아 삼 천 길을 곤두박질하는 마치 쏟아지는 은하수 같은(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폭포를 목도한 곳이어서, 계곡에서 길 잃은 정도전이 “나도 모르게 그림 속에 들어왔네(不知身在畵圖中)”라고 갈파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러한 곳을 만나기가 힘들겠지요. 장막 삼아 쳐 놓은 구름이나 물소리 따위는 탐욕과 몰인정을 배태(胚胎)한 기계문명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비슷한 풍치를 담은 곳이 있습니다. 임천(林泉)과 인위(人爲)가 극적인 조화를 이룬 숲인 소쇄원(瀟灑園)입니다.
이 원림(園林) 입구에 펼쳐진 웅장한 대숲에서 깊은 여름을 만끽하기 위해 시조 한 수 불러야겠습니다. “푸른 산중 백발옹(白髮翁)이 고요 독좌(獨坐) 향남봉向南峰)이로다/ 바람 불어 송생슬(松生瑟)이요 안개 걷어 학성홍(壑成虹)을 주곡 제금(啼禽)은 천고한(千古恨)이요 적다 정조(鼎鳥)는 일년풍(一年豊)이로다/ 누구서 산을 적막타던고 나는 낙무궁(樂無窮)인가 허노라.”
가만히 귀 기울이니, 바람이 소나무 악기를 타고 골짝에 무지개가 펼쳐지며 새들은 풍년을 기원합니다. 가객은 훌쩍 이달(李達)이 되었다가는 고운(孤雲)이 됩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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