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인]다시 쓰는 촛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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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인]다시 쓰는 촛불의 미학

[시론]박찬인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 승인 2008-07-23 00:00
  • 신문게재 2008-07-24 21면
  • 박찬인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박찬인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 박찬인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 박찬인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불빛이라고 모두가 어둠을 밝히는 게 아니다. 백열등이나 형광등은 어둠을 쫓아낸다. 그러나 촛불은 그렇지 않다. 촛불은 빛을 냄으로써 주위의 어둠을 돌아보게 한다. 제 몸을 태우면서 온통 어둠 속에 둘러싸여 있다고 알려준다. 그렇다. 촛불은 오히려 어둠을 드러내고 일깨운다.

흐릿한 램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어둠을 뚜렷이 드러낸다. 아니면 적어도 빛과 어둠이 공존함을 환기시킨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시꺼먼 천장에 매달린 램프의 불빛으로 인해 그늘에 묻힌 어둠이 더 짙어진다. 그래서 농민들의 어두운 삶이 진솔하게 배어난다. 이처럼 어떤 불빛들은 어둠을 증언하고 고발한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불빛들 가운데 어둠에게 곧 먹힐 것 같이 애잔한 불꽃은 역시 촛불이다. 늘 곧추서서 타오르지만 단 한 번의 입김에도 흔들리는 나약함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따라서 촛불은 쉽게 사라져버릴 수 있는 운명의 불확실성, 덧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둠 속의 빛으로서 촛불은 광명이나 생명력을 나타낸다. 그래서 촛불의 미학은 늘 다의적이다.

고정되지 않은 불꽃은 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그래서 바슐라르의 말처럼 촛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이며 불꽃의 몽상가는 모두 잠재적인 시인이다. 촛불은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하고, 삶과 죽음·영원을 생각하게 이끌지 않는가. 이러한 촛불은 외로움을 태우듯이 혼자서 타고, 혼자서 꿈꾸는 것으로만 여겼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벌써 두 달 넘게 계속되는 촛불문화제는 촛불의 꿈이 나약하지도 외롭지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2일 중고등학생들과 시민들이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켰다.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민주화나 독재타도, 자유 수호 같은 거대담론도 아니고 양극화나 대운하 같은 정책의 문제도 아니었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단순한 식탁의 문제였다. 언뜻 보면 태생적 나약성을 지닌 촛불이었다.

그러나 그 촛불이 집단지성의 능동성과 자발성, 누리꾼들의 감수성과 상상력의 해방공간을 만들더니 마침내 6·10 항쟁 이상의 인파를 동원하는 혁명이 됐다. 지난 6월 10일 세종로를 가득 메운 촛불들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보석이었고 그것은 우리의 염원과 소망을 담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이었다.

저 영롱한 불빛을 소화기와 물대포로 끄려고 할 때, 최루액과 형광색소 그리고 진압봉으로 다스릴 때, 검거위주의 신공안정국으로 억누를 때, 빛은 산산이 부서지는 듯 하면서 더 멀리, 더 깊이 퍼졌고 더 많은 빛을 모았다. 이제 사제와 승려, 목회자들이 앞장서 평화의 빛을 인도하고 나섰다. 촛불이 ‘불장난’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밝히는 횃불이 된 것이다.

지난 5일 광화문에서 남대문을 거쳐 명동에 이르는 촛불들. 대전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 또다시 타오른 백만 가까운 촛불들은 더 이상 촛불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빛의 강이었다. 어둠의 거리로 도도하게 흘러가며 넘실대는 빛의 물길이었다. 물방울이 모여 ‘명박산성’을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담보한 큰 강이 됐다.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은 우리의 정체성을 파묻고 있는, 우리의 자주적 주권을 검게 가리고 있는 어둠을 휩쓸어 떠내려 보내려는 강이 됐다.

저 순수한 빛의 강물에 맞설 게 무엇이랴. 강물은 막으면 돌아가고, 아니면 고였다가 더 큰물이 되어 넘어가는 법이다. 하물며 빛의 강물이야 말해 무엇하랴. 수차례의 담화문 발표나 진실이 결여된 사과 발표가 촛불을 끌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말 바보다. 오직 ‘헌법 제1조’의 노래처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의 인정만이, 국민에게 행복하게 항복하는 길만이 성난 불길, 물길을 잦아들게 할 것이다. 국민은 이미 승리자다.

조명등은 어둠을 밝히지만 촛불은 아, 마음을 밝히는 불꽃이다. ‘혼불’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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