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종 우송대학교 총장 |
세계적인 정복자로 알려진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승리도 재물도 그 모든 영화가 헛된 것임을 후세인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불가에서도 영원한 화두이며 가르침이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물을 모으는 것도 손이요. 승리와 성취도 모두 손 없이는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을 내놓거나 털어 내버리는 것 또한 손이 하는 일이다.
얼마 전 거의 한 달 만에 손녀딸을 만났다. 녀석은 이제 세 돌이 채 안됐지만 부쩍 자라서 어른과의 의사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게 되었다. 요즈음 나에게 있어서는 지구도 그 애 중심으로 돌아가고, 우주 만물의 이치도 그 손녀딸을 통해서 새롭게 깨우치게 된다.
“할아버지, 인경이 달리기 잘해요. 내가 이겨요.”
그러면서 입을 꼭 다물고는 그 콩알만 한 두 주먹을 눈높이로 쑥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 주먹 안에 자부심과 의지가 똘똘 뭉쳐져 있다. 그렇다. 꼭 쥔 주먹 안에는 굳은 결의나 다짐이 들어있다. 가슴 높이에서 심장 쪽으로 향하는 꼭 쥔 주먹이나, 양팔을 내려뜨린 채 불끈 쥔 주먹은 어떤 일을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가 뭉쳐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쥔 손도 바르게 쥐어야 한다. 세상에 있는 재물을 자기 것이 아닌 것까지 긁어쥐려고 하거나, 또 주먹 안에 들어온 것을 절대 내놓지 않으려고 단단히 움켜쥔 채 풀지 않은 것은 그 스스로를 탐욕에 물들어 고독해지게 만들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도둑질과 같은 나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단단히 주먹을 쥐거나, 자신의 승리를 위해 남을 해치는 것도 불사할 의지로 주먹을 그러쥔다면 이는 스스로를 불행과 뼈저린 후회에 빠지게 할 것이다. 긍정적이고 정의로우며 양심적으로 단단히 쥔 주먹이라야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이겨 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단단히 쥔 주먹을 알맞은 때에는 펼 수도 있어야 한다. 두 손을 활짝 펴서 강인함을 떨쳐낸 후 부드럽고 따스하게 내민 손은 얼마나 큰 사랑의 손인가? 예수가 제자나 고통 받는 사람들의 머리위에 얹어주는 활짝 편 손, 그리고 가부좌를 한 채 한 손을 무릎위에 얹어두고 다른 한 손은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염려 말라고 활짝 펴서 내밀어주는 부처의 손의 의미를 새겨보아야 한다.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던 적을 향해 내가 먼저 두 손바닥을 펴들고 가볍게 흔들어 보일 때 이뤄지는 평화, 열심히 모은 재산을 어려운 이웃에게 거침없이 내놓는 행복, 그러고는 서로 우의를 표현하는 악수, 연인끼리의 정다운 손잡음... 이와 같은 평화와 우의, 행복과 사랑의 표현들이 우선은 손을 먼저 편 후에 꽉 마주 잡고 서로 마음을 공유한 다음에 다시 힘을 빼어 살며시 놓지 않는가.
“인경아, 우리 꽃 보며 슈퍼 갔다 올까?”
“할아버지, 슈퍼가 아니고 슈퍼마켓이에요.”
녀석이 앞장서서 꽃잎을 닮은 신을 찾아 신더니 현관을 나서면서 살며시 내손을 잡는다. 그 따스함과 말랑거림은 갓 태어난 작은 산새의 심장소리 같아서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우리의 주먹이 진정 이처럼 순수하고 신성한 열정으로 쥐어지고, 때로는 알맞은 때에 잘 펴져서 상대방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맞이할 수 있는 여유와 배품이 깃들어 있다면 섬김의 리더십이 넘치는 상생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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