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차라리 굶으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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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차라리 굶으라 하지

  • 승인 2008-07-23 00:00
  • 신문게재 2008-07-2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한 끼만 먹으면 일식씨, 두 끼 먹으면 이식군, 세 끼 다 먹으면 삼식 새끼, 한 끼도 안 먹으면 영식님. 집에서 밥 먹는 횟수에 따라 남편을 분류한 유머다. 그렇지만 세상의 아내들이여! ‘경제도 어려운데(!)’ 이식이, 삼식이 남편이라도 눈칫밥 먹이지 마시길. 남자는 여자보다 더, 소위 ‘밥심’으로 산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가 이럴 때 유력한 증인이 되어준다. 남자는 한 끼 7홉, 여자는 5홉, 아이는 3홉을 먹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두 끼가 일상화된 시대였지만 지금보다 2배 이상 먹었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밥이 그냥 밥인 적 있었던가.

밥을 먹는 도구부터 우선 범상치가 않다. 수저받침 위의 수저는 사이좋게 누운 부부 형상 같다. ‘밥’은 모든 음식의 대명사다. ‘밥값’은 먹은 만큼, 받은 만큼의 대가이며, ‘밥맛’은 먹고 싶은 욕망, 어쩌면 살고 싶은 욕망 자체다.

토지박물관에서 본 옛날 밥그릇이 인상깊었다. 고구려 밥그릇 1300g, 고려 밥그릇 1040g, 조선 밥그릇은 690g의 쌀이 담긴다(사진 속 우리집 밥공기는 350g). 고구려인이 동아시아를 호령한 원천이 밥심 아니었을까 넘겨짚어 본다. 물론 옛날에도 소식가가 있었고 다이어트가 있었다.

하나의 예가 조선시대 절식패명(節食牌銘)이다. ‘의젓한 너 천군(=몸의 주재자인 마음)이여!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팻말의 글을 낭송하며 과식을 경계한 풍경을 그려 보라. 또 밥 한 그릇도 거절할 땐 단호했다. 동춘당 송준길이 말년에 대전에 살며 임금이 하사한 음식을 사양하는 사식물소(辭食物疏)가 있다. 관청 곡식을 축낼 수 없다는 간곡한 상소였다. 그 글엔 굶주리는 백성 얘기를 함께 곁들였다.

송대 명문장가 소동파는 절음식설(節飮食說)도 지었다. 절식하면 비용이 절약된다는 게 이유의 하나다. 수레, 가마를 타면 다리가 약해지고 골방, 다락방은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어여쁜 여인은 건강을 해치는 도끼이고 맛난 음식은 창자를 썩히는 독약이다. 그의 네 가지 조심할 일(書四戒)은 시공을 초월해 유효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제안한 ‘하루 두 끼 운동’은 소동파의 경우보다 좀 좀스럽다. 재산이 29만1000원이라는 그가 아침 겸 점심인 브런치(아점)를 즐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좋지 않은 처방이다. 세 끼 중 두 끼 채식해서 지구를 살리자 한다면 명분이라도 나았겠다.

다이어트, 웰빙, 슬로 라이프 따위는 먼 나라 일로 신(新)보릿고개를 지나는 서민에게 세 끼는 사치스러운 식습관일 수도 있다. 북한 주민 3분의 2가 하루 두 끼 먹는 현실은 곧 비참함이다. 멀리 가지 말고, 우리 빈곤층 아동 20%가 두 끼밖에 못 먹는 것이 절약인가 말이다.

박정희 시절의 구호가 ‘두 끼 먹다가 세 끼 먹자’였다면, ‘경제난 해결 위해 두 끼만 먹자’라는 전직 대통령 훈수는 박물관에나 어울릴 처방이요, 국민이 죽을 먹나 밥을 먹나 무관한 이들의 가십성 한담으로 들린다. 다시 내가 정의한다. 정치란, 삼시세끼 잘 먹게 해주는 것이다. 식사(食事)는 세상사(世上事)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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