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마다 부러운 사람은 여씨춘추 편찬자인 진나라의 여불위다. 그는 천하의 지식인을 식객으로 초빙하여 긁어모은 지식을 저잣거리에 방(榜)으로 내걸었다. 틀린 글자, 틀린 곳을 찾아내면 포상을 내린 것이다. 그런 여씨춘추라고 오류가 없을 리 없다.
요즘 교정을 열 번 이상 보는 출판사의 책에서 오자가 보이고 국어사전에도 오퍼레이터의 삑사리 흔적이 스쳐간다. 최첨단의 센서, 바이오, 퍼지 시스템을 다 동원해도 불가능한 게 잡티 없이 글 쓰는 일이다. 글쓰기는 농사짓는 것과 같아 가끔은 피[稷]가 섞인다. 심지어 댓글에 너 이것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까지 오타가 난다.
좋다. 다 좋은데, 국어공부 다시 해라, 이러고도 봉급 받냐, 너네 회사 돈 많은가 봐, 라는 악의적인 댓글을 보면 다른 세계를 넘보고 싶을 때가 있다. 피아노를 이 정도 쳤으면 진작에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을 테고, 수십 년 목청을 가다듬었으면 가왕(歌王) 흉내라도 냈을지 모른다. 조용필이 피 토하며 득음했다는 말은 잘 알려진 얘기다. 본인에게 물으면 “노래하는데 무슨 피냐, 가래겠지” 하고 만다.
정확히 8만1258장. 경판 양면 한 장 파려면 두 달은 걸리는데 5200만 글자 중 오.탈자가 ‘거의` 없다. 사방팔방(八)을 봐도(目) 바르다는 참 진(眞)자의 깊은 뜻을 생각하며 옆옆이 정성을 쏟기에는 데드라인(마감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사대의 팽팽한 사수처럼 긴장해서 쓰고 콩알 고르듯 골라도 남는 삑사리들!
언젠가 제헌절에 개헌 관련 글을 쓰면서 새끼손가락이 말썽을 부려 ‘제헌`이 ‘개헌`이 됐다. 조선 사람은 낯 먹고 산다는데, 그 아픈 삑사리를 들춰 광고하는 인사를 보고는 사소한 실수에 둑이 무너지나 싶었다. 그 영겁의 미끄럼틀에 미끄러진 미스큐(miss cue)는 제헌절이 있는 한 잊지 못한다. 이럴 때 불완전한 기억은 오히려 축복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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