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제헌절 삑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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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제헌절 삑사리

  • 승인 2008-07-17 00:00
  • 신문게재 2008-07-18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삑사리`, ‘삑사리 났다`. 뭔가가 ‘삑` 하고 지나가는 느낌을 주는 말. 빗맞음, 어긋남, 틀어짐의 뜻. 노래할 때 고음부에서 옥타브가 순식간 올라가는 현상도 삑사리라 한다. ‘헛치기`로 순화하는 순간, 말맛이 싹 사라지는 정말 여운이 묘한 단어.


연주회에서 삑사리(미스 터치)를 잡아내는 필자지만 정작 피아노는 못 친다. 그 대신, 스무 살 때부터 공병우식 타자기를 두들겼다. 그러나 손가락이 생각을 뒤쫓다 보면 심심찮게 오자가 따라붙는다. 삑사리를 두려워하면 명연주가 안 된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 후유증은 활자로 박혀 길이 남는다.

그럴 때마다 부러운 사람은 여씨춘추 편찬자인 진나라의 여불위다. 그는 천하의 지식인을 식객으로 초빙하여 긁어모은 지식을 저잣거리에 방(榜)으로 내걸었다. 틀린 글자, 틀린 곳을 찾아내면 포상을 내린 것이다. 그런 여씨춘추라고 오류가 없을 리 없다.

요즘 교정을 열 번 이상 보는 출판사의 책에서 오자가 보이고 국어사전에도 오퍼레이터의 삑사리 흔적이 스쳐간다. 최첨단의 센서, 바이오, 퍼지 시스템을 다 동원해도 불가능한 게 잡티 없이 글 쓰는 일이다. 글쓰기는 농사짓는 것과 같아 가끔은 피[稷]가 섞인다. 심지어 댓글에 너 이것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까지 오타가 난다.

좋다. 다 좋은데, 국어공부 다시 해라, 이러고도 봉급 받냐, 너네 회사 돈 많은가 봐, 라는 악의적인 댓글을 보면 다른 세계를 넘보고 싶을 때가 있다. 피아노를 이 정도 쳤으면 진작에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을 테고, 수십 년 목청을 가다듬었으면 가왕(歌王) 흉내라도 냈을지 모른다. 조용필이 피 토하며 득음했다는 말은 잘 알려진 얘기다. 본인에게 물으면 “노래하는데 무슨 피냐, 가래겠지” 하고 만다.

프로 치고 연습벌레 아닌 사람 있을까? 프로골퍼는 아이언 헤드가 마르고 닳도록 공을 쳐댄다. 명장의 손에는 어김없이 칼에 긁히고 베인 자국과 화상이 있다. 한데 이 타자수(?)의 세계는 왜 열심히 연습하는 만큼 행운이 함께 따라주지 않은가. 그래서 한 자 새기고 세 번 절한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본받을까도 생각해 봤다.

정확히 8만1258장. 경판 양면 한 장 파려면 두 달은 걸리는데 5200만 글자 중 오.탈자가 ‘거의` 없다. 사방팔방(八)을 봐도(目) 바르다는 참 진(眞)자의 깊은 뜻을 생각하며 옆옆이 정성을 쏟기에는 데드라인(마감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사대의 팽팽한 사수처럼 긴장해서 쓰고 콩알 고르듯 골라도 남는 삑사리들!

언젠가 제헌절에 개헌 관련 글을 쓰면서 새끼손가락이 말썽을 부려 ‘제헌`이 ‘개헌`이 됐다. 조선 사람은 낯 먹고 산다는데, 그 아픈 삑사리를 들춰 광고하는 인사를 보고는 사소한 실수에 둑이 무너지나 싶었다. 그 영겁의 미끄럼틀에 미끄러진 미스큐(miss cue)는 제헌절이 있는 한 잊지 못한다. 이럴 때 불완전한 기억은 오히려 축복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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